안상인 요셉 신부. 나는 여즉껏 차 씨 성의 신부로 알고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안 씨 성의 신부님이었다. 잊을 수 없는 분인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45년 전인 1979년 11월 18일 나에게 세례를 주신 분이다. 그 때는 지금의 대치동 성당을 짓기 전 도곡동 천막성당 시절이었는데, 나는 퇴계로 사무실에서 퇴근을 한 후 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지나 도곡동 성당에서 교리 수업을 받았다.
도곡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건 아내 집, 그러니까 처가가 도곡동에 있었기 때문이었고, 1980년 1월 결혼 후 이 동네로 이사를 와 도곡동 성당엘 다녔다. 안 신부님이 나를 기억하실리야 없을 것이지만,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도곡동 천막성당 다닐 때 에피소드가 몇몇 있다. 결혼을 앞두고 혼배성사 전 신부님의 신해청아파트 사제관을 찾은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신부님이 양담배를 피우고 와인에 고급진 치즈를 먹는 걸 보고 심사가 좀 뒤틀려 따졌을 것이다. 신부님이 그 때 빙그레 웃으시며 이러셨던 것 같다. “우리가 뭐 별 거 있습니까. 보기에 좀 고급진 것 그저 이렇게 하는 게 낙이지요. 보기에 안 좋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좀 봐 주시지요…”
대치동 성당을 짓느라 모금운동이 성당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건축비를 신자들이 자청해 각 가구마다 할당되고 있었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하는 모금행위가 때때로 좀 지나칠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우리 구역 담당하시는 분과 그 문제로 좀 다투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다. 주일 교중미사 신부강론시간에 내가 공개적으로 그 문제를 비판을 썪어 지적을 했다. 신부님은 좀 강하게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계실 뿐이었다.
그 후 나는 과천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성당을 떠났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명동성당에서 안 신부님을 만났다. 그 때 그레고리안 찬트를 전공하신 장모님이 미국유학을 가려는데, 성당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서울교구본부가 있던 명동성당으로 갔을 때 거기에 계신 신부님을 만난 것이다. 신부님은 그리고 그 후는 뵙지는 못하고 한 두어번 소식을 듣기는 했고 그러다 그냥 잊고 지냈다. 오늘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눈에 익은 어떤 신부님이 보이길래 좀 자세히 봤더니 바로 안 신부님이었던 것이다.
신부님은 2008년 이후 미국과 멕시코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며 지냈던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올해가 사제서품 58년으로 이미 은퇴했고, 지금은 은퇴신부들의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았다. 위 사진은 신부님이 언제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45년 전의 그 모습이 잘 살아있다. 아래 것은 젊었을 적인 1981년 대치동 성당 주임신부로 대치동성당 입당 미사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인데, 왜 그런지 좀 생경해 보인다.
#안상인요셉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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