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산에서의 지난 날 어떤 여름의 한 추억 이야기다.
가포해수욕장을 지나 갯바위를 거슬러가면 어디가 나올까.
아주 어릴 적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아마도 커크 더글라스와 실비아 망가노가 나오는 '율리시즈'인가 하는 영화에서,
가포 그쪽 바다와 비슷한 그리스 에게海 해협을 본 후일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혼자서 그 쪽으로 갔다가 여러가지로 죽을 뻔 했다.
상상과 욕구의 힘은 크다.
이끌리듯 혼자서 가포바닷길을 걸어가는데, 머리 속은 기어코 영화에 나오는,
해협을 가로질러 서 있던 그리스의 海神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가득찼다.
날카로운 갯바위를 건너고 또 건너 걸어가는데 길이 끝이 없다.
저 모서리만 돌면 뭐가 나타나겠지 하지만 계속 돌아가는 갯바윗길이다.
수영복과 팬티 겸용의 반바지는 물에 젖었고, 무르팍과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과 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어느 모서리를 돌아가려는데, 뭔가 느낌이 쏴 했다.
뭔가, 그 半人半獸의 해신이 분명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두려움이다.
사위는 온통 정지된 느낌이다. 잔잔한 파도를 인채 바다는 조용하다.
뭔가가 저 앞에서 히뜩하고 보인다. 펄럭이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긴장된 상태에서 보여지는 것은 무슨 장막같은 것이었다.
아, 저 장막 속에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 장막까지 숨죽이며 걸어가 장막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장막을 쑥 걷어 내렸다. 장막 안에 뭔가 있었다.
휘끄무래한 무엇이 들어붙어 꿈틀거리는(two bodies lay engangled).
내가 그것을 보는 순간 찢어지는 비명과 동시에 휘끄무래한 그 것들은 바삐 따로 분리되고 있었다.
그것들의 이상 야릇한 시선이 나를 옴짝도 못하게 했다.
못 볼 것을 봤고, 그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그 연인들은 그 곳에 사람들이 올 생각을 못하고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속에서
그 어떤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막은 막대기에 걸어놓은 옷가지들이었고.
나는 그날 그 먼 거리를 걸어서 남성동 집으로 왔다. 정신없이 걸었다.
남녀 간 그 짓이었는데, 왜 나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두려움(?)이 들었을까.
그게 정신을 몽롱하게 하면서 시야를 헷갈리게 했다. 몇 차례 넘어지고 어딘가에 쥐어 박히고.
그러다 호주머니에 든 차비까지 잃어 버렸다.
하여튼 우왕좌왕했다. 못 볼 걸 본 댓가라고 생각했다.
고백할 게 있다. 댓거리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길바닥에 '비과'라고, 그 때 우리가 즐겨먹던 과자가 포장지가 벗겨진 채 반 동가리 쯤 버려져 있었다.
누가 먹다가 버린 것이면 어떤가. 그 걸 집어들고 입에 넣었다. 영판 거지였다.
그 해 여름 그 자리, 그 휘끄무래한 네발은 아직도 나에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커크 더글라스와 실바나 망가노도 그 기억에 연관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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