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必大 교수의 <韓國旅行風物記>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북한산을 오르곤 했는데, 이제는 쉽지가 않다.
얼마 안 있어 그런 산행을 먼 일처럼 여겨질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허허로워진다.
체력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그 이유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이제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어떤 파이팅이랄까,
그런 정신적인 의지가 자꾸 박약해져 가는 것도 산행을 저어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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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그래서인지 자꾸 옛 산행을 돌이켜 보게하는 자료를 본다든가, 옛 사람들의 산행기를 들춰보는 게 습성이 됐다.
그런 관심의 범주랄까, 책장에서 오래 된 문고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韓國旅行 風物記>라는 제목의 책이다.
예전 1970년대에 중앙일보에서 일본의 ‘암파문고’ 처럼 <중앙신서>라는 문고판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그 중의 하나로, <중앙신서 6권> 이다. 1978년도 발간으로 나와 있으니,
총각시절 그 때 <중앙신서>를 사서 모으던 시절의 책이다.
필자는 조필대(趙必大)다. 조필대, 조필대,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명지대 교수로 계시면서 우리나라의 산하를 풍류삼아 주유하며 많을 글을 썼던 분이다.
내가 산에 빠져든 시기는 1980년대 초, 그러니까 결혼을 하면서 생활이 좀 안정되면서부터다.
그 무렵 조필대 교수의 글을 많이 접했다. 조 교수의 글은 그 당시 주로 <월간 山>에 많이 실렸고,
나는 그 잡지를 즐겨 보았었기에 자연 그 분의 글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조 교수 이 분의 인적사항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와 고향이 비슷한 경남 출신이라는 것과 독문학을 전공하셨다는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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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 풍물기>에도 조 교수 이 분의 프로필이 간략하게 나와있다.
이 프로필에서는 내가 그동안 몰랐던 게 있었다. 이 분이 1915년 함안 출신이고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교사를 역임하셨다는 것,
그리고 명지대 이전에 이화여대 교수를 하셨다는 것이다. 이 분이 내 모교에서 가르쳤다면 그건 분명 독일어일 것인데,
나로서는 처음 알게되는 것이어서 흥미와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포함해 좀 더 찾아보았는데, 그 어느 검색사이트에서도 이 분에 관한 자료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도 한 시대를 산행과 관광전문가로 많은 글과 자료를 남기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사진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사람에 관한 자료에 관해서는 거의 미개국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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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갖고있는 옛날 책들에 이 분에 관련된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뒤지다가
1970년대 사회 각계명사 77인의 산행에세이를 모은 <山>이라는 책을 발견해 뒤졌더니 과연 그랬다.
조필대 이 분의 글 한편과 사진이 소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프로필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 분에 관한 검색자료로는 이런 게 있다. 이 분의 따님이 LG그룹 具 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는 것,
그리고 2018년 당시 한 아이돌그룹의 멤버로 추정되는 이 분의 손자가 TV에 나와 전문 산악인 및 저술인으로서의
할아버지를 자랑삼아 소개하고 있는 짤막한 기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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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