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이선관 형 19주기…

stingo 2024. 10. 26. 16:04

세월이 참 빠르다. 선관 형 세상 뜬지 거의 20년이 다 돼가고 있으니.
오늘 페이스북에 뜬 아래 이미지포스팅을 보고 알았다.
마산서 선관 형 19주기를 맞아 형을 기리는 시문학제가 열린다는…
나는 형 가신지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는지 실감이 되질 않는다.
바로 며칠 전 서울역 앞에서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 무렵 형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들이 마산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때 형은 60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 얘기들이 하도 갈래 갈래라 설마, 설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형 몸도 그렇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으로 서글픈 심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래서 마산을 한번 내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한진고속터미널 쪽 지하도를 건너 서울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산에 내려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고개 숙여 궁리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바로 앞에서 누가 멈춰선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하, 영철이 아이가!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놀라움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 어렴풋한 모습의 선관 형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게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엉겁결에 앞에 서있는 사람의 두팔을 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보았다. 분명 선관 형이었다.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던 선관 형이 바로 내 앞에 살아서 서 있는 것이었다.

그게 2004년인가 그랬을 것이다. 그때 형은 집을 나와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날 서울역 앞에서 만났을 때 형이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선관 형이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얘기를 마산에 알린 게 바로 나였다.
형은 그러고 바로 그 이듬해인 2005년 세상을 떴다.

형은 뇌성마비라는 天刑의 몸을 오로시 시로 극복한 시인이다.
형을 떠올리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흘러나오던 창동거리 ’음악의 집‘이 생각난다.
삐그덕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 2층,
회색 벽면에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의 편지가 커다랗게 걸려있는 ‘음악의 집‘에서,
형은 대학에 갓 들어간 우리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문학을 얘기하며 시를 읊던 마산 창동의 시인이었다.
밤이 이슥해지고 술이 오르고 그리하여 형에 의해 이끌리어 간 시민극장 아래 형 집,
그리고 창이 거리 쪽으로 나있는 형 방에서 형은 우리들에게 항상 ‘핀란디아’를 들려주었다.


(이선관 시인; 1942-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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