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늙었고, 집도 늙었다
집도 늙었고, 나와 마누라 우리 두 내외도 늙었다. 자연스런 조합이고, 잘 순응해서 살고 별 탓이 없으면 집도 우리와 함께 금생을 할 것이라 여기고 있다. 그런데 가끔 씩 말썽을 부린다. 말 잘못 했다. ‘가끔 씩‘이 아니고 이제는 아예 그런 시점에 접어든 것이다. 사람이 늙으면 몸에 이상이 오듯, 집도 상하고 허물어진다. 요즘 와서 부쩍 그러는게 아마도 지금이 그 시점인 것 같다는 것이다. 집에 탈이 나 고치려 온 분이 집에 들어와 한번 둘러보고는 하는 말이 이랬다. ”집이 많이 늙었습니다. 온통 쑤시고 결리고 할 것이니 돈 좀 많이 들어가겠습니다.“
그저께 밤에 싱크대 배수관이 막혔다. 싱크대 양쪽의 조그만 그 두개의 배수구 구녕이 막히면서 집에 일대 혼란이 일었다. 물이 내려가질 않으니, 싱크대 개수대에 물이 가득 차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역류하고. 아내는 베이킹소다 등 용해제를 뜨거운 물과 함께 들이 부으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따라했다가, 싱크대는 허연 베이킹소다로 범벅이 됐다. 구녕을 뚫을만한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변기 쑤시는 플라스틱 긴 용기를 비롯해 긴 철제꼬쟁이를 만들기 위한 철제옷거리 등을 다 동원해 써봤지만 별무효과였다. 싱크대 아래 안쪽을 들여다보니 배수관이 V자 형태라 수직으로 찔러봤자 효과적으로 굴곡진 부분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아내와 둘이 해결하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아침 결국 사람을 불렀다. 어느 부분이건 역시 전문가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우리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이랬다. 나는 그래서 오늘 중으로 관리사무소에 가서 따지려 한다. 관리사무소 사람더러 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오죽 좋겠냐만 거기가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닌 줄은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라든가 기술자에 대한 정보는 마련해 적시에 알려주는 서비스는 최소한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항의를 하면 돌아올 답은 이미 예상된다. 특정업체를 소개해주는 건 오해의 소지 운운할 것이다. 관리사무소라는 곳이 입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곳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결코 그런 단선적인 답변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얘기하고 따질 것이다. 아내와 아침 6시부터 전문업체를 찾아보느라 거의 두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서울에 있는 기술자분과 연락이 돼 그 분이 우리 집을 어렵게 온 것이다.
싱크대 배수구와 배수관을 훝고 뚫어 막힌 부분을 해결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전문기술자답게 내시경 등 첨단장비를 갖고와 진단을 한 후에 작업에 들어간지 30분도 안돼 해결이 됐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른 곳에 있었다. V자형 배수관 한쪽이 깨져 새는 것이다. 이 일은 싱크대 막힌 것을 뚫어주는 일과는 별개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 분이 내 소관이 아니라고 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분은 사람이 참 좋았다. 그 일과 관련한 장비가 없는데도 머리를 짜내 임시방편으로따나 새는 부분을 교체해주고는 본드 등으로 막아주는 조치를 취해졌다. 그리고 그 분은 혹여 그 일로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전문기술가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정말이지 감지덕지할 일이다. 공사비는 20만원이 들었다.
그 분은 집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이런 말을 했다. ”늙은 집에 사려면 잘 다루고 잘 타협해서 살아야 합니다.“ 늙은 집과 타협? 그 타협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일까…


#싱크대배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