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iens(사람)

다시 김영준 대위

stingo 2025. 6. 6. 17:53

아, 그 날이 1976년 9월 26일이었구나.
아래 저 글을 쓴 이는 76년 당시 강원도 화천 전방부대에서 나를 만나러 찾아왔던 김영준 대위다.
김 대위는 내가 1975년 11월 제대하기까지 근무했던 파주 광탄 신산리 1사단 통신보급소 과장이었고,
나는 김 대위를 행정서기병으로 모셨다. 이게 인연이 되어 그 전날 흑석동에 있던 나를 찾아왔던 것인데,
김 대위는 이날 신촌 이화여대 입구 어느 책방엘 데려가더니 사고싶은 책을 사라고 했다.
내가 무슨 얘기냐고 했더니, 전방 군인으로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그것 뿐이라고 했다.
사양은 통하질 않았다.

전공서적 외에 한 10여권을 골랐을 것이다. 김 대위는 책 속 표지에 일일이 저 글을 썼다.
그리고 공부 잘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화천으로 귀대한다며 갔고, 그 후로 볼 수가 없었다.
하도 연락이 안 돼 이문동에 있던 김 대위 형님댁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김 대위를 잊고 있다가, 2009년 어느 날 <행정학 원론>이라는 책이 서재 책장에서
눈에 들어오길래 펼치다가 저 글을 발견하면서,
아, 이 책이 김 대위가 그때 사준 책이라는 걸 알고는 김 대위 생각이 새삼 사무쳤다.

그날 이후 김 대위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지지 않고 있다.
출신 사관학교까지를 뒤졌으나 알 수가 없었다. 2016년인가 그 사관학교 출신의 후배되는 어떤 분이 귀띰을 해줬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김 대위는 나보다 두어 살 위였을 것이다.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대위를 달고 과장에 보직돼 있었지만, 통신보급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행정서기병으로서 나는 김 대위를 보좌하고 많이 도왔다. 그래서 김 대위는 나를 좋아하고 아꼈던 것 같다.
일과시간 끝나면 영외거주 김 대위 숙소를 나는 내집처럼 들락거렸다. 광탄 바닥 술집에서 술도 함께 많이 마셨다.
휴일이면 자전거를 타고 ‘자유의 다리’ 피크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다.  

1976년이면 반세기 전이다. 그 해 9월 저날이면 내가 모 신문사 견습기자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다.
그 시험에 나는 떨어졌다. 통신사와 광고회사 등 몇 군데에 붙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걸 마다하고 짐을 꾸려 고향 마산으로 내려갔다.
떨어진 신문사로 들어가기 위한 재수를 결심했던 것인데 마음 먹은대로 되질 않았다.
그 이듬해 서울로 올라왔다. 우여곡절이 많던 시절이다.
그래서 저 글을 보며 김 대위 생각에 젖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1976년 9월이라는 시점이 또한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영준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