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농장'
과장이 좀 귀엽게 심한, 평촌 사는 한 후배가 있다.
이 후배의 '과장' 가운데 한 토막은 농장에 관한 것이다.
걸핏하면 "내 농장, 내 농장"하고 "농사, 농사" 운운 한다.
누가 들으면 어디 시골에다 농장이나 마련해 놓고 대단한 농사나 짓고 사는 줄 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나름 꽤 실속있게 사는 후배이기 때문이다.
하도 그러길래 한번 따라 가 보았다.
청계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청계산 산행을 겸했다.
산행을 끝내고 '농장'으로 가자고 해서, 드디어 그곳으로 가는 줄 알았다.
청계사 아래 풍광 좋은 계곡 아래로 이끌고 가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도로 옆에서 조금 들어갔더니 널찍한 들판이 나왔다.
그게 나는 후배의 농장인 줄 알았다.
지난 4월 주말농장에서 감자를 심는다고 포즈를 취한 후배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곳은 주말농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후배의 과장이었던 것이다.
주말농장의 한 귀때기 땅이 자기의 '농장'이었던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면박아닌 면박을 줬지만, 후배는 당당했다.
농장이 별 거냐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으면 그게 농장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후배의 그 '농장'을 근자에 많이 간다.
청계산 산행 후 뒤풀이하기에 좋은 장소다.
그곳 관리하는 땅 주인이 청계리 토박이라, 그곳 지형이니 역사에 관해 아는 게 많다.
그 주인과 함께 소줏잔을 기울이는 재미도 있다.
후배의 주말농장 농막에 앉아 바라다 보는 풍광이 좋다
지난 3월에는 돼지를 반마리 잡았다해서 푸짐하게 먹었다.
그런 신세를 지고 있으니, 나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 주말농장을 후배의 '농장'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후배의 그런 과장이 내포하고 있는 심정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지난 해 여름, 후배 주말농장에서의 한 때
누구나 나이가 들면 귀향을 원한다.
귀향? 그보다는 산도 있고 논도 있는 귀농이 더 좋을 것이다.
나의 처지를 뒤돌아 본다.
돌아갈래야 갈 땅도, 밭때기도 없다.
후배가 농장이라 과장하는 주말농장 한평도 없다.
고향을 떠나 살아오면서 마땅히 이룬 것도 없지만,
돌아가고픈 고향 땅에 한 몸 뉘일 거처하나 없고,
양식 마련할 땅도 없다.
그러니 결국은 그런 생각이 나로서는 궁벽한 마음으로만
그려보는 호사일 따름일 뿐이다.
고려 말, 조선 초(麗末鮮初)의 문인이었던
亨齎 李稷이 나의 이 맘을 아는지
동병상련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古里無田可得歸 每思萍迹輒嚬眉
誰人剩有桑麻地 乞與先生不失時
(고향엔 돌아갈 만한 밭도 없지만,
부평초 같은 발자취 생각할 때마다 눈썹이 찌뿌려진다
누구라도 남아있는 뽕밭 삼밭이 있으면
농사철 어긋나지 않게 빌려주길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