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f

재미있고 심오하고 슬픈, 조선의 초기 천주교신자들의 세례명(聖名)

stingo 2021. 10. 13. 13:37

지난 3월 천주교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조성 중 우연히 발견된 230년 전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1759-1791)과 권상연의 무덤은 한국 천주교회와 학계에 흥미있는 연구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윤지충(왼쪽)과 권상연(오른쪽)의 묘에서 출토된 사발지석. 정민 교수는 사발 속 글씨가 정약용의 필체인 것으로 추정한다(조선일보 사진)

 

우선 윤지충의 무덤에서 발견된 사발백자誌石의 글씨를 다산 정약용이 썼을 것이라는 주장(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이 제기된 것이 그 중 하나인데, 이는 정 교수의 십여년에 걸친 다산의 생전 서체 찾기와 맞물리면서 다산의 서체와 여러 각도에서 비교해 봤을 때 정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일보 10월 11일짜 보도)

그런데 한편으로 윤지충의 사발백자지석문을 보면 다소 생경한 한문이 보인다. 지충이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글 가운데 '聖名'이라는 것과 '保祿'이라는 한문이 그렇다.

'聖名'이라는 것은, 지충이 천주교 신자였기에 지금으로 치면 세례명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면 '保祿'은 무엇인가인데, 이 두 단어가 이어져있는 것으로 볼 때 말하자면 '聖名'이 바로 '保祿'이라는 것이다.

세례명 '保祿'은 바오로(Paul)이다. 조선시대 천주교 초기시절 세례명은, 지금처럼 聖人들의 이름을 빌어쓰되, 그 표기는 발음에 따른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면 '保祿'은 어떻게 유래돼 조선땅에서 바오로가 되었을까.

그 유래는 조선보다 천주교가 먼저 전래된 중국이다. 중국에서의 바오로에 대한 한자와 중국발음이 있었을 것이다. '보록(保祿)은 그 중국발음에 유사한 조선식 발음이고 그 발음에 따라 '보록'이 된 것이다.

(조선 천주교 초기 가톨릭 성인들의 행적을 기록한 '성년광익'에 나오는 성인들의 조선식 이름 표기)(가톨릭평화신문 사진)

 

이 부문 연구에 정통한 정민 교수에 따르면 '성년광익(聖年廣益),' '사학징의(邪學懲義)' 등 조선시대 천주교 초기 서적과 관련 문서들을 보면 세례명이 전부 이런 식이다.

예컨대 최소이(崔召吏)의 세례명은 이사발(二四發)로 나온다. 이는 엘리사벳(Elizabeth)으로, 중국의 이사보얼(依撒伯爾) 발음이 조선으로 와 이사발로 된것이다. 또 성조이(成召吏)는 마달(馬達)인데, 이는 마르타(Martha)로, 중국에서는 마아따(馬爾大)로 불렀고, 그 발음이 조선에 와서는 마달이 된 것이다. 최필제의 백다록(白多祿)은 베드로(Peter)이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원래 여러 글자로 된 세례명을 두 글자나 세 글자로 축약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사진은 「사학징의」-정법죄인질에 보이는 보이는 세례명(왼쪽)과 「사학징의」-조혜의의 공초 기록 중 세례명 부분(오른쪽).(가톨릭평화신문 사진)

 

 

조선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많은 억압을 받았다. 따라서 교회에서 받은 세례명을 마음껏, 그리고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의 세례명은 지어지고 불려지는 과정이 일견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억압의 그림자가 스며있는 슬픈 이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시절 세례명을 '聖名'이라는 말 외에 좋지않은 뜻의 '사호(邪號)'로 불러 쓴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당시 세례명은 신자들 사이, 그리고 官의 눈치를 피하는 은폐의 용어로도 쓰였다. 이런 얘기도 있다.

다산 정약용의 세례명은 요한이었다. 다산이 천주교 행적으로 관청에 끌려가 심문을 받을 때, 증거로 제시된 여러 서한들 가운데 '정약망(丁若望)'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심문관이 정약망이 누구냐고 따져 묻자, 다산은 "제 일가 중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며 딱 잡아뗐다. 하지만 '약망'은 다산의 세례명인 요한을 일컫는 말이었으니, 다산이 그 이름을 모른다는 말은 자신이 자신을 모른다는 것과 같았다.

다산은 심문관이 '약망'이 천주교 세례명인 줄 짐작치 못하고, 집안의 돌림자인 약(若)자 항렬의 어떤 사람인 줄 아는 듯하자,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 명백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이 때만 해도 심문관의 서학에 대한 지식, 예컨대 세례명에 대해서는 이처럼 어수록한 구석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나의 세례명인 다니엘(Daniel)을 조선의 초기 천주교 시절에는 어떻게 부르고 표기했는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 중국어 것을 찾아보니 '단니이(丹尼爾)'로 나온다. 이의 중국어 발음에 따라 조선에서 다니엘을 부르고 표기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