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미학', 샘 페킨파(Sam Peckinpah) 감독
페이스북에 샘 페킨파(Sam Peckinpah; 1925-1984) 감독과 그의 영화를 소개하는 그룹 'Sam Peckinpah'가 있길래, 어쩌다 한번 씩 들릴 적마다 그의 옛 영화를 떠올려보곤 한다.

1970년대 한창 그의 영화가 꽃을 피울 적에 페킨파를 일컬어 ‘폭력의 미학’을 추구하는 감독이라고들 했다. ‘The Wild Bunch’ 같은 영화가 이를테면 그런 범주에 속하는데, 선과 악의 구별없이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그저 죽고 죽이는 무자비한 폭력의 난무 속에서 뭔가 잔잔한 애잔함을 남기는 뒤끝의 연출이 페킨파 감독 영화의 백미라고들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뭐랄까, 그에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측면은 있다. 페킨파의 영화는, 영화를 본 후 한참 지나 잔상을 많이 남긴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페킨파의 그 유혈이 낭자한 신(scene)들이 한동안 머리에 계속 따라다니는데, 물론 충격적인 것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에 더해 그 폭력적 행위들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어떤 당위적인 것으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는 점이다.
이는 나의 경우지만, 아무튼 그런 점에서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페킨파 감독에 대한 그런 평가에 일말의 수긍을 보태고는 싶다. 그러나 그런 평가에 농축된 의미는 여전히 나로서는 이해부득의 측면이 없잖아 있다.

페킨파 감독은 영화 속에 영화와 관계없는 유명인을 슬쩍 끼워넣는 ‘까메오 기법’을 많이 활용한 감독이기도 하다. 예컨대 1973년 작인 ‘Pat Garrett&Billy the Kid’에 당시 한창 컨튜리 싱어 송 라이터로 명성이 높던 밥 딜런(Bob Dylan)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을 까메오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크리스토퍼슨은 이를 계기로 그 후 페킨파 감독 연출이 아닌 다른 영화에도 몇 차례 출연하기도 했다.

페킨파 감독의 영화들 중 내 기억에 가장 크게 인상을 남긴 영화를 꼽자면 1971년 작인 ‘스트로 독(Straw Dogs)이다. 다스틴 호프먼(Dustin Hoffman)과 수잔 조지(Susan George)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가정과 예쁜 아내를 악당들로부터 지키려는 백면서생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상영됐을 때도 ‘미성년자관람가’로 등급판정이 날 정도로 아주 ‘건전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 후 이 영화의 잘려진 부분이 공개되면서 영화의 내용이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완전히 바뀐다. 잘려진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집에 잠입하려는 악당들을 갖은 수단으로 맞서는 더스틴 호프먼을 그의 아내 수잔 조지가 남편을 배신, 악당들에 사로잡히려는 마음에서 남편인 호프먼을 뒤에서 총으로 죽이려하는 장면인데, 그 내용이 당시 윤리적으로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 검열과정에서 그 부분을 잘라냈던 것이다. 그 후 이 부분이 담겨진 오리지널 영화가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