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밥
김밥을 좋아한다. 나이들어 혼자 밥을 먹는 ‘혼밥’에 익숙해진 데다 간편하면서도 ‘단짠’한 맛이 구미를 당기기 때문일 것이다. 젊었을 적, 그러니까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아내가 김밥을 자주 말아주곤 했는데, 아이들이 없으니 김밥을 이젠 하질 않는다. 어쩌다 김밥 타령을 하면 밖에 나가 사먹으라고 한다. 우리 동네는 후져서 그런지 김밥 파는 데가 없다. 예전에 한 곳 있었는데, 없어진지 오래 됐다.
며칠 전 무료한 오후 무렵 갑자기 김밥 생각이 났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걸 먹으려고 집을 나와서는 원당시장까지를 마을버스를 타고 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두툼하게 말아주는 그 김밥집이 문을 열고있지 않아 허탕만 쳤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집 이름은 알았다. ‘지영이 김밥.’
어제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어 강남역 쪽으로 나갔다가 모처럼 풍성한(?) 기분을 느꼈다. 강남역 지하상가의 두 서너 곳 김밥집의 각양각색의 풍성한 김밥들 구경을 하면서 그랬다. 점심 약속이 없었다면, 만사 제쳐놓고 김밥집에 들어가 김밥을 사 먹었을 것이다. 후배와 히레소주를 곁들인 맛있는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나와 강남역으로 다시 가면서도 부른 배와는 관계없이 또 김밥 생각이 났다. 결국 메뉴가 다양한 한 김밥집에서 망설임 없이 멸치가 들어 간 김밥 두 줄을 샀다.
2호선을 타고 교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다. 마침 자리가 있길래 앉았고, 이제 그냥 편안하게 앉아가면 집으로 가게 될 일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졸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다 집 두 정거장 전인 원당역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두 정거장을 지나 대곡역에서 몸을 발딱 일으켜 허겁지겁 내렸다. 히레소주 취기는 아마 그 때쯤 가셔지고 있었다.
역 개찰구를 나와 지하도를 걸어 나오면서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랬다. 내 손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김밥을 두고 내린 것이다. 식탐이란 것은 그래서 허망하기도 한 것이다.

오늘 김밥에 대한 그 허망스런 식탐이 다시 생겨 그여코 김밥을 먹었다. 아침 일찍 북한산을 오른 후 늦은 아침 격으로 김밥을 먹은 것이다. 하산하는 곳은 늘상 구기동이다. 거기서 김밥을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CU편의점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김밥전문점에서 사 먹는 것이다.
어디를 택할지를 구기동으로 내려오면서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해결했던 요기가 너무 깔끔하고 맛이 좋아 거기를 갈까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근데 편의점 김밥이 문제다. 통상적인 김밥은 없을 것이고 삼각김밥 정도로 먹어야하는 게 좀 걸렸다. 삼각김밥 두 개에 쌀국수컵짬뽕이면 무난할 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은 편의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그래도 김밥을 먹으려면 정식으로 된 김밥을 먹는 게 건강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낫지 않겠냐는 망설임 때문이다. 편의점 바로 위에 ‘예찬 김밥’이라는 김밥전문집이 있다. 그 집은 구기동에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 30년 전부터 있었던 집이고, 몇 차례 가본 바로는 맛이 있는 ‘맛집’이었다. 그래서 그 집으로 갔다. 김밥 한 줄과 라면 한 그릇을 시켰다. 조그마한 공간의 그 김밥집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김밥과 라면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내 생각이 옳았다. 김밥은 맛이 있었고, 덩달아 시킨 라면도 국물 맛이 깊고 좋았다.

맛있게 먹으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문득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김밥 한 줄 3,500원에 라면 한 그릇 3,500원. 이 정도 수준이면 무척 싼 집이다. 요즘 김밥전문점에서 김밥 한 줄에 보통 5, 6천원이다. 어제 강남역 김밥집도 최하가 4,500원에 내용물이 좋은 건 6,500원이었다. 그래서 가게를 좀 살펴봤더니, 젊은 청년이 돈을 받고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 같았고, 두 분 아주머니가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김밥집 이름이 ‘예찬’인 것은 아마도 기독교 정신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맥락적으로 김밥 값이 왜 이리 싸느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