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과 대구의 '청라(靑蘿)언덕,' 그리고 조원기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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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대구의 '청라(靑蘿)언덕,' 그리고 조원기 선배

by stingo 2023. 4. 17.

어제 고등학교 재경동문 모임에서 좀 마셨다. 오늘 아침에 보니 엊저녁 그 취한 와중에서도 들고온 게 있다.

주최측에서 준 타월과 책 한 권이다. 책 제목을 언뜻 봤다.

<이은상 노랫말 이야기>. 무슨 책인가 싶어 뒤져보면서 필자인 조원기라는 분이 이은상 선생을

연구하고있는 대선배라는 점에서 뭔가 집혀지는 게 있었다.

 

 

 

내 직감이 맞았다.

책은 이은상 선생의 시로 만들어진 가곡의 노랫말을 문학과 음악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머리가 바로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선배의

이 책 집필에 대한 의지가 읽혀진다.

그러니까 선배는 이 '동무생각'의 시에 담겨진 노산 선생의 뜻과 의지를 분석하면서,

현재 잘못 해석돼 전해지고 있는 이 가곡과 시의 본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동무생각'은 가사에 들어있는 '청라언덕'과 관련해 이 언덕이 이 가곡의 작곡자인 박태준이

다녔던 대구의 계성학교 인근 푸른 담쟁이 거리와 동산 일대의 언덕으로 확정해 대구의

문화적 코드로 기정사실화하면서 널리 알리고있고 이게 또한 거의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라언덕'과 관련한 대구시의 주장에 반기를 든 분이 바로 조원기 선배라는 사실은

나도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저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다.물론 대구시의 그런 처사가

잘못되고 못마땅한 것이라는 건 마산을 고향으로 둔 내 입장에서도 견지하는 것이었다.


지난 2012년인가, 교수신문에 있을 적에 노산 선생의 '동무생각'과 '청라언덕,

그리고 대구시의 처사와 관련해 칼럼을 하나 쓴 것은 말하자면 나의 그런 입장의 한 단면이었다.

그렇지만 그 때를 돌이켜보면 나로서는 더 이상 파고들어 사안을 바로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청라언덕'이 마산이면 어떻고 대구면 어떻냐는 식의,

말하자면 시와 노래가 좋으면 그저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밋밋하고 소극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선배의 이 책을 대하면서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이 사안을 보는 내 인식이 너무 허접스럽고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조원기 선배는 이미 2011년부터 노산 선생의 '동무생각' 시와 가곡의 내용과 뜻이 왜곡되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바로 잡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했던 것인데,

그 각고의 의지가 고스란이 이 책에 담겨지고 있는 것이다.


조 선배는 노산 선생의 '동무생각' 이 시에 담겨진 뜻이 왜곡되고 있는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선배는 노산 선생이 이 시를 쓴 배경부터를 개인적인 가족사까지 소개하며 바른 뜻을 전하고 있다.

선배의 외할아버지가 노산과 같이 동경 유학까지 했던 친구 사이로,

이 시가 쓰여진 배경과 뜻을 외할아버지로부터 일찌기 전해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대구시가 주장하듯, '동무생각'과 '청라언덕'이 박태준의 대구 계성학교 시절

한 여학생과의 애틋한 사랑을 나눈 그런 의미와 무대가 아니고,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와 독립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을

선배 외조부가 노산으로부터 직접 들었고, 외조부는 아주 어릴 적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이다.

 

 

조 선배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그저 개인사적인 추억이나 기억 만을 근거로 하고있는 건 아니다.

이 시에 얽힌 시대적 배경이나 당시 봄이면 푸른 쑥이 지천으로 자라던 마산 노비산과 그 쑥을 뜯던

백합 같은 흰 옷 일색의 조선 처녀들을 그리고 있는 노산의 고향과 나라 사랑이 깃든 문학적인

논거까지를 일일이 제시하고 있다. 특히 대구시가 '담쟁이넝쿨'로 묘사하고 있는 '청라언덕'의 '라(蘿)'자가 담쟁이가 아닌 쑥이라는 점을 대한민국에서 출간된 모든 옥편을 동원해 밝히고 있다.

예전 내가 쓴 칼럼에서도 나는 '라'자가 담쟁이가 아니라 쑥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당시 나의 논거가 겨우 네이브 한자사전 하나였다는 점이 새삼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니까 선배는 '동무생각'에 나오는

"...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구절을 그런 의미로 음미해보면 이 시가 어떤 시인 줄 알게될 것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있다.


조 선배는 문제가 된 '동무생각' 외에도 노산의 주옥같은 시로 만들어진

'봄처녀' '고향생각' '장안사' '성불사' 등의 노랫말을 맛깔스런 필치로 더듬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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