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카테고리의 글 목록
본문 바로가기

memory72

고교동기들과의 창덕궁 탐방, 그리고 낙원동의 추억 어제 고교동기들과의 창덕궁 탐방. 어언 70줄 나이에 든 우리들 처지로서는 여러모로 합당하게 어울리는 좋은 나들이다. 나로서는 몇십년 만의 창덕궁이라 그런지 창덕궁에서의 가는 곳마다에 옛 추억이 떠올랐다. 옛날 성균관대에서 창덕궁 후원인 비원으로 통하는, 아는 사람만 아는 통로가 있었다. 1978년인가, 다니던 옛 회사 사무실이 창덕궁 맞은 편 원남동 골목에 있었다. 사내결혼을 한 아내와 데이트를 할 적에 회사사람들 눈을 피하려니 장소가 아주 제한적이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처지에 아내 모교인 명륜동 성균관대 인근이 그런대로 괜찮았고, 그래서 그 동네를 자주 찾았다. 성대에 와서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는 비원으로 통하는 그 비밀통로를 이용해 비원과 창덕궁엘 많이 왔었던 것이다. 그런 옛 기억을 떠올려.. 2023. 10. 14.
추억의 ‘The Sound of Silence’ The Sound of Silence. 1970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많이 듣고 따라 부르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노래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해보면 음악성 뿐 아니라 폴 사이먼의 문학적인 천재성이 드러난다. 이 노래에 얽힌 추억 하나. 1학년 때 청파동에서 하숙 할 적에 숙대 정문 앞 적산가옥에 살던 경식이라는 약대 4학년 선배가 있었다. 기타를 잘 다뤘고 노래도 잘 불렀다. 학교축제를 앞두고 이 선배가 이런 제의를 해왔다. 축제 음악콩쿨에 한번 나가보자는 것이다. 1등 상품이 대단했다. 선배가 나를 하도 추켜세우는 바람에 응락을 했다. 레.. 2023. 8. 28.
1968년의 옛 사진 한 장과 친구들 1967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한 당부가 있었다. "이제 고등학교도 들어가고 했으니, 네 몸 하나는 네가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네 몸을 보호할 운동을 하나 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게 태권도다. 당시 마산에는 태권도에 두 부류의 도장이 있었다. 창무관과 청양관이다. 창문관이 손놀림과 동작에 있어 수도를 쓰는 반면 주먹 형식의 정권을 쓰는 곳이 청양관이다. 나는 창무관을 택했다. 1960년대 당시 창무관이 마산에 여러 곳이 있었을 것인데, 나는 오동동 선창가에 있는 도장으로 가 태권도를 배웠다. 기억하기로 마산 창무관의 관장은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공 씨 성을 가진 분이었고, 오동동 도장의 사범은 정명훈이라는 분이었다. 나는 운동을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했고 한 두어 .. 2023. 4. 27.
아버지의 고향 阿火, 박목월 시인의 고향 乾川, 그리고 牟梁 '심상소학교'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경주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예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오래 전에 경주시로 편입됐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에 내 큰집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동네 한 가운데 오래되고 큰 고목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그 동네의 표지목 역할을 했으니 지금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혼자 찾아갈 적에 길을 잃어 조마조마했을 때 문득 나타나 반가움을 주던 나무다. 마을 앞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다. 五峰山이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산이다. 초입에 '쪽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었고, 꼭대기에 가면 호랑이 동굴이 있었다. 나의 큰 어머님이 어느 봄인가 나물 뜯으러 올랐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걸음아 나 살려.. 2023. 4. 11.
추억의 옛 ‘내외통신’ 사우들 오늘 옛날 직장 후배가 정겨운 추억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그 후배는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를 지내고 현재 모 언론사에 재직 중인 이영종 박사다. 위 사진 맨 아래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 박사다. 후배는 자신이 북한과 통일관련 전문기자와 전문가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모태로, 그가 1990년대에 다녔던 내외통신사를 꼽으면서 저 사진을 올렸다. 위 사진은 내외통신사 창사 20주년 때 찍은 것인데, 1994년의 저 사진에 나는 없다. 나는 1990년에 13년을 재직한 내외통신을 그만 두고 다른 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나는 1977년 보도국기자로 입사해 1981년 국제국으로 옮겨 차장으로 영문판 일을 하다가 다른 언론사로 옮겨갔다. 내가 빠진 저 사진에 나오는 분들 대부분은 잘 안다. 중앙에 앉은 분들 가운.. 2023. 3. 13.
창덕여고 '빵떡모자' 어제 SNS에 어떤 분이 아내와 관련된 옛 사진을 올렸다. 1970년대 안국동에 있던 창덕여고 학생들 등.하교 장면의 흑백사진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창덕여고 학생들은 서울의 여고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모자를 쓰고 다녔다. 교모였던 셈인데, 그 모자가 아주 특색이 있어 창덕여고생들을 구분짓게 했다. 모자는 베레모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고 베레모라고 하기에는 남학생들이 아닌 여고생들이 집단적으로 쓴다는 점에서 좀 애매하기도 했다. 이 모자를 안국동 인근에 산재한 남자 고등학생 학생들은 '빵떡모자'라고 불렀다. 모자의 눌러진 모양이 눌러진 빵이나 떢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 모자에 주어진 별칭으로는 '고바우 모자'라는 게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2023.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