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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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故人에 대한 한 추억 1976년 나의 대학졸업 논문이 북한언론에 관한 것이다. 우리 때부터 졸업논문제가 실시돼 논문 통과없이는 졸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북한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다른 사람이 별로 손 대지 않은 영역, 그러니까 지도교수 조차도 잘 모르는 분야의 것을 쓰면 쉽게 통과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 때는 북한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전공자가 별로 없던 시기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북한의 언론에 관한 논문을 썼고, 희귀했던 탓인지 내 논문은 우수논문으로 채택돼 과 학회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게 계기가 돼 졸업 후 일자리도 그 쪽이었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북한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더러 많이 알게됐다. 지금은 다들 고인이 되신 김창순, 김남식, 조덕송, 이기봉 씨를 비롯해 김준엽, 양흥모, 김.. 2022. 3. 13.
追憶의 옛 물건들 옛 물건들. 무얼 어떻게 하려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나무상자에 나름 잘 보관해 두고있던 것들인데, 오늘 우연히도 내 눈에 발견됐다. 저런 물건들 한 두어개 없는 집들이 없을 것이라 괜히 궁상 떠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기억을 더듬어 그 내역을 한번 반추해 본다. 목각 두꺼비는 60여년 전 외사촌누이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 때 누이는 창녕 계성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입학 전이었다. 누이가 외지에 소풍 갔다왔다면서 마산 오는 길에 나에게 이 두꺼비를 건넸다. 누이는 외삼촌이 이혼하시는 바람에 아주 어릴적 부터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도 늘 누이가 불쌍하게 보여 나름 잘 챙겼고, 그래서 누이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누이와는 그동안 못보고 지내다 작년 9월 외.. 2022. 3. 6.
설악산 봉정암의 추억 2題 (緣木求魚) 이십여년 전 장마철 어느 여름날의 설악산 봉정암. 절에 무슨 행사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불공 들이려 온 불자들로 봉정암은 미어 터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네명. 친구 둘과 독일문화원에 계시던 독일인 한 분. 주지로 계시는 스님을 잘 알고있는 관계로 우리들은 운좋게 절 위 요사채 방 한칸에 기거할 수 있었다. 요사채에서 아래로 바라다뵈는 절의 인파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우리들의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비는 간간히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행장을 풀고 마루에 앉아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일인 벨쓰 씨가 나를 보고 눈짓을 한다. 방으로 들어와 보라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벨쓰 씨가 자기 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대용량의 위스키 한 병. 맥켈란18년산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2022. 2. 6.
‘작은 설날’ 2題 아내는 전을 열심히 부치고 있고, 나는 거실에 무료하게 앉았다. 슬쩍 가서 전을 하나 집어 먹는다. 막 부쳐진 동태전은 따끈하고 고소하니 맛있다. 하나로 양이 안 찬다. 또 하나. 아내가 내 그런 모습을 보더니, 말 없이 접시에 몇 개를 담아 먹으라며 준다. 그걸로 하날 먹었다. 그런데 맛이 별로다. 접시 전을 소쿠리에 붓고 다시 살며시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처음 하던대로 슬쩍 가서 하나를 또 집어 먹었다. 역시 그게 맛있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좀 의미심장하게 본다. 저 양반, 치매 끼가 왔나… 8년 전 작은 설날 저녁의 한 풍경. 예전에는 저랬다. 작은 설 저녁이면 모였다. ‘작은 설맞이’로 한 잔하는 것이다. 마산서 차례 모시러 올라오시는 석태 선배가 도착하는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2022. 1. 31.
아버지의 故鄕, 아화(阿火) "건천은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드는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에 구름" - 박목월, `산'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경산, 영천을 거쳐 경주로 갈라치면, 경주 조금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행정상으로는 예전에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돼 바뀌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윗 동네와 아.. 2021. 12. 22.
아르데코 풍 아날로그 '나쇼날 오븐(oven)' circa 1980s 1980년대 아날로그 식 오븐. 일견 좀 둔탁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당시로는 첨단인 기계식 타이머가 부착된 만능 조리기였다. ​ ​ ​ 저걸 꺼내놓고 보니 저 안에서 재잘거림이 들린다. 80년대 초 과천 살 적에 큰애, 작은 애 할 것없이 저 오븐으로 아내가 많은 걸 해 먹였고, "땡!" 하며 요리가 다 됐다는 시그널을 보내면 아이들이 손벽을 치곤 했다. 나는 그때 한창 인기를 끌던 피짜 맛에 끌려, 아내가 저것으로 피짜토스트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 ​ ​ ​ 어제 주방 정리를 하다 저게 나왔다. 아내는 낡고 오래된 것이니 버리자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애착이 갔다. 그 이유는 물론 있다. ​ 저 오븐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계셨던 어머니가 일시 귀국하면서 사들고 오셨던.. 2021.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