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 阿火, 박목월 시인의 고향 乾川, 그리고 牟梁 '심상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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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고향 阿火, 박목월 시인의 고향 乾川, 그리고 牟梁 '심상소학교'

by stingo 2023. 4. 11.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경주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예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오래 전에 경주시로 편입됐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에 내 큰집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동네 한 가운데 오래되고 큰 고목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그 동네의 표지목 역할을 했으니 지금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혼자 찾아갈 적에 길을 잃어 조마조마했을 때 문득 나타나 반가움을 주던 나무다. 마을 앞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다. 五峰山이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산이다. 초입에 '쪽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었고, 꼭대기에 가면 호랑이 동굴이 있었다.
 
 
 
 
 
나의 큰 어머님이 어느 봄인가 나물 뜯으러 올랐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걸음아 나 살려라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나물 망태기도 팽개쳐 버리고.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싸릿문 앞에 그 망태기가 놓여져있더라는 얘기다. 호랑이가 갖다 놓았다는 얘긴데, 믿거나 말거나... 그 큰 어머니 돌아가신적도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 큰 아버지 세상 버리신지도 십수년이 흘렀고.
 
아버지는 아화에서 기차로 두 정거장 떨어진 모량(牟梁)이라는 곳의 소학교엘 다니셨다. '청록파' 박목월(1913-1978) 시인의 고향도 그 쪽이다. 아화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건천(乾川)이라는 곳인데, 아화로 오려면 반드시 지나치는 곳이다. 어릴 적의 기억은 동네 한 가운데 牛시장이 있었고, 장날이면 흰옷입은 할배들이 할매를 뒤에 달고 장죽대를 물고 어슬렁거리던 곳이다.
 
 
 
박목월 시인도 모량소학교 (정확히는 모량 심상소학교)엘 다녔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와는 소학교 동문인 셈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박 시인이 1925년 생인 내 아버지보다 12년 위이니 선배가 되겠다. 언젠가 박 시인의 아드님인 박동규 서울대명예교수가 어느 TV에 나와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모교가 모량 심상소학교라고 회상했을 때, 웬지 모르게 정겨움을 느꼈었다.
 
박동규 교수와는 예전에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두어 번 조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애꿎게도 박 교수는 그 때마다 경로석에 기대앉아 졸고 계셨다. 내 딴에는 박 교수에게 인사를 드리고 부친인 박목월 시인과 내 아버지가 모량 심상소학교 동문이라는 걸 인연삼아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곤하게 졸고 계시는 걸 깨울 수도 없어 망설이다 그만 두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오늘 우연히 박목월 시인이 고향 건천을 그리워하는 옛 詩 한편을 대하면서 내 아버지와 박목월 시인, 박동규 교수가 생각났고, 아버지의 고향 아화도 정겹게 따라왔다.
 
"건천은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드는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에 구름"
- 박목월, '산' -
 
 
 
 
박목월 시인과 아들 박동규

 

박목월 시인 내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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