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악천후 속 지리산 능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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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elf

1년 전 오늘, 악천후 속 지리산 능선에서

by stingo 2023. 6. 7.

딱 1년 전 오늘, 지리산 주능선 상의 칠선봉에서 사고를 당한 날이다.
악천후 속 비바람을 뚫고 장터목까지 가다 비구름에 휩쌓인 칠성봉을 쳐다보려
후드를 손으로 올리다,
아차! 하는 느낌과 함께 날카로운 바위에 얼굴을 부닥쳤다.
그 때의 그 절망감.
바위 뾰족한 부분이 눈을 찔렀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악천후 속 지리산 능선에 헬기가 뜰 수가 없을 것이니,
아마도 나는 생사의 기로에 섰을지도 모른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일단 눈 쪽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곁의 한 친구에게 얼굴 상태를 물었다. 괜찮다. 윗 코뼈가 부었고 상처가 났다.
그 말을 듣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천신만고 끝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해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래봐야 일회용 반창고 하나 달랑 붙이는 정도다.




대피소에서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
사고 당할 당시 곁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사고나고 정신들이 없는데 니는 우쨌는 줄 아나?
그 당시 내가 한 짓을 물은 것인데,
친구는 그 게 좀 뜻밖이었던 것 같다.
나는 눈이 무사할 뿐더러 코 뼈 쪽의 타박상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갑자기 친구더러 내 왼쪽 가슴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걸쳐입은 조끼의 왼쪽 위 주머니를 만져보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가 시키는대로 뭣도 모른 채 거기를 만졌다.
그러고는 여기에 뭐가 들어있네, 이기 뭐꼬? 했다.
내가 그것을 꺼냈다.
그것은 묵주였다.
묵주는 지리산 종주에 나서면서 나의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어져있었던 것이다.
카톨릭을 좀 아는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묵주가 너를 살렸구나.




오늘 일년 전 지리산 능선상에서의 사고,
그리고 그 때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나에게 되묻고있다.
너는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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