匿名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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匿名으로 걷다

by stingo 2021. 10. 31.

매일 걷는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1년이 훨씬 지났다.
그렇게 마주쳤으면 이제는 서로 아는 체의 목례도 있을 법 한데 아직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친다.
아주머니의 표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표정이다. 표정이 없는 상태로 그저 앞만 보고 걷는 듯한데,
또 어찌보면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걷는 듯 하기도 하다.
무슨 관계랄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아주머니와 나는 1년이 넘게 그 길에서 서로 마주치면서도 모른 채 걷고있다.



그런 상태이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아주머니를 마주칠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아주머니가 오른 손에 항상 묵주를 들고 걷고있기 때문이다. 나의 오른 손에도 묵주가 들려있다.
나는 아주머니와 마주칠 때면 항상 아주머니 손이 들고있는 묵주를 본다.
그리고는 얼굴을 본다. 그 순간에 어떤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냥 무표정이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그냥 걸어간다.
나를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어떤 때는 좀 매정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그 아주머니도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고있을지 모르겠다는
짐작을 갖는다. 내가 저만큼에서 걸어오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에 든
묵주를 숨기고자 하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차피 피차일반 아닌가.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아주머니에게 내가 뭔가 좀 수그러지는 느낌을 갖는다.
무슨 기싸움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니,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인사를 드리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몇 날을 그 아주머니와 지나쳤는데, 지금껏 먼저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아침 길에서도 아는 체를 하질 못했다.
그러면서 왜 내 마음이 자꾸 바빠지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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