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일 치 약, ’반어법‘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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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125일 치 약, ’반어법‘ 할머니…

by stingo 2023. 10. 18.

그 할머니는 바나나를 잔뜩 사갖고 왔다. 우리들더러 먹으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좀 주춤주춤했다. 바나나를 먹기 전에 물어볼 말을 망서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할머니의 남편되시는 할아버니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오늘 내일 하시는 것으로 다들 알고있다.
내 물음에 할머니의 표정이 보기에 확 바뀐다. 밝은 모습이다.

아, 네, 잘 있어요. 그냥 그러긴 그런데 웬 노인이 앙탈이 많아졌어요.

할아버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은 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말하자면 연명치료를 하고있는 것인데,
할머니의 표정에 어둠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할아버지 힘이 왜 그리 센지 자꾸 일어나시려고 해서 묶어두고 왔어요.

할머니의 그 말에 모두들 좀 어안이 벙벙했다. 치매를 앓은지 오래 된데다 성하지 않은 허리와 다리,
그에다 코로나와 폐렴이 겹쳐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힘에 세지고 앙탈이 심해졌다는 걸 곧이 곧대로 들으라는 것일까.

모르겠어요. 저러시다 어느 날 갑자기 배고프다 밥달라며 투정을 부릴 것 같기도 해요 ㅋㅋ…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할머니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어둠이 깃드는 걸 나는 보고야 말았다.
못볼 걸 본 것이다. 그런 심경으로 내가 좀 빤히 봤더니,
할머니는 갑자기 바나나 한 개를 뚝 끊어서는 나더러 먹으라고 했다. 할머니 나름의 임기응변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본심을 감추고 있었다. 속으로 꽉 찬 슬픔과 답답함,
안타까움을 할머니는 그런 식의 반어법으로 표현하면서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그걸 모를리가 있을까.
그래서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바나나를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지난 6월에 찍은 사진. 나는 찍느라 빠졌다


0…동네 약국에 약이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얼마 전에도 그러더니 어제도 그랬다.
약이 떨어졌다며, 1/5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며칠 후에 가능하다고 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제약회사 공급이 줄어든 탓이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약품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국내 또한 그 여파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약국 측의 말은 좀 다르다. 약품에 대한 급여적용이 확대된 데다 약품 원료값의 국제적인 인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대책으로 말하자면 약값을 올려야한다는 것인데,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어제 내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심장약이 자그마치 4개월 분이다.
구체적으로 125일치 약을 처방받은 것이다. 약값만 십여 만원이다.
이 가운데 어제 약국에서 내 준 건 1/5인 25일 분이다.
나머지는 약이 들어오는대로 마련해 놓을 터이니 와서 찾아가라는 것이다.  
125일치 약은 4개월 분이다. 그러니까 4개월 후에 병원에 오라는 의사 말은 고마운데,
그 반대급부로 결국 약이 부담을 주는 것이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게 마련인 것은 곳곳에서 뒤따른다.

약국의 꼼꼼한 젊은 여약사는 못 준 100일치와 관련한 확인서를 써줬다.
약이 모자라 이런 확인서 받아본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화정중앙공원#능곡온누리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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