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마산이 배경인, 이병주 소설 <돌아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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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n(馬山)

1960년대 마산이 배경인, 이병주 소설 <돌아보지 말라?

by stingo 2023. 8. 30.



“마산. 드디어 나는 마산으로 돌아왔다.”

소설의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된다. 이병주 선생의 장편 <돌아보지 말라>이다. 마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드물다.
그러니 마산을 고향으로 둔 처지에서는 반갑다 못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좀 더 읽어나가니 지금 읽어봐도 착 감겨져오는, 당시의 마산을 표현한 글들이 나온다.

“소음마저도 고요하게 들리는 이 (마산)시가의 까닭을 나는 안다.
산들의 침묵이 거리의 소음보다 크고, 바다의 고요가 기선의 기적소리보다 묵직한 까닭이다.
마산은 이를 도시라고 하기엔 등지고 있는 산들이 너무나 웅장하다.
마산은 이를 항구라고 하기엔 앞으로 한 바다가 너무다 정숙하다…
그러면서도 이 마산은 도시로서의 생리와 도시로서의 병리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항구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지녔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이 소설을 선생이 쓴 게 1968년이니, 그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뭔가를 어느 정도는 알 만큼 알 만한 나이에서
선생의 이런 표현은 당시 마산에 대한 내 느낌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반갑다는 것이다.

<돌아보지 말라> 이 소설은 이병주(1921-1992)의 소설작품들 가운데 거의 사장되다시피한,
그래서 잘 알려져있지 않던 작품이다. 1968년이면 선생이 마산을 오가면서 마산의 해인대학에 출강하고있던 시기로,
그 무렵 마산의 ‘경남매일신문’과 연이 닿아 이 신문에 연재했던, 말하자면 신문연재소설이다.
그런만큼 발행부수도 많지 않은 지방신문에다, 연재한 기간(1968. 7 - 1969. 1)도 짦았었기에
이병주 문학의 한 소산으로는 그 존재가 흐미해져 있었던 작품이다.

이 소설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이병주를 좋아하는 어느 분의 제보, 그리고 이를 눈여겨 본 한 출판사에 의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소설은 2014년 ‘나남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었다.
당시 이 출판사 주필로 있던 마산 출신의 소설가 고승철은 마산중학교 다닐 적의 기억 속에 이 소설이 있었기에 출간을 주도했다.
고승철은 이 책 앞 머리에 이 소설에 얽힌 얘기와 책 출간의 저간의 배경을 글로써 적고있다.



<돌아보지 말라> 이 소설은 1960년대 마산과 가포의 ’결핵요양병원‘을 배경으로 가정을 가진 같은 처지 두 남녀의 애정행각을 담은,
그러니까 속된 말로 ’불륜 로맨스‘를 주제로 한 대중소설이다.
하지만 불륜으로 시작된 사랑이 끝내 순애보라는 좋은 의미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
그래서 고승철은 서문에서 이 소설을 ”불륜문학의 절정…예술로 승화하다“는 헤드라인을 곁들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 제목 <돌아보지 말라>는 애정소설에는 맞지않는, 액션이나 활극소설에 어울릴 듯한 느낌을 주는데,
바로 이런 게 ‘이병주 식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일종의 유별성이 아닌가하는 나름의 생각을 해 본다.
이 제목은 소설 끝부분에 결어적인 형태로 나온다. 말하자면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남녀 주인공 둘이 서로에게 지나온 옛 일은 이제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자는 뜻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그러니까 로맨티시즘 적인 내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말을 가미함으로써 그 부분을 더 강조하고있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병주 식’이라는 것이다.

이병주 선생의 이 소설이 하필 마산의 ’경남매일‘에 연재된 것과 관련해 나로서는 짐작되는 바가 하나 있다.
그 신문사에 선생과 잘 지내는 친구 분이 계셨다. 안윤봉이라는 분으로, 두 분은 사상이나 이념, 문화예술,
그리고 풍류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교감관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아마도 안윤봉 이 분이 이병주 소설 연재를 주도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사족 하나.
나는 훨씬 이후이지만 1977년 이 신문사에 잠깐 있으면서 이 두 분을 만나뵐 수 있는 영광의 시간들을 잠시 갖기도 했다.
당시 기획실장이면서 술을 좋아하셨던 안윤봉 선생은 술자리마다 나를 잘 불러냈다.
견습기자로 교열부에 있던 어느 날, 선생은 근무시간인데도 나를 불러 데려 나갔다.
마산의 옛 월남다리 아래 ’화신순대국집‘엘 갔더니, 이병주 선생이 불콰해진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좀 있다 저녁 쯤이면 서울서 누가 내려온다고 했다. 소프라노 이규도 어쩌구저쩌구 하셨다.
그날 저녁 그 집에 아름다운 소프라노 아리아가 울려퍼졌는지 기억에 없다.
아, 그리운 그 시절.







#이병주#돌아보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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