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f'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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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성모마리아’ 대곡에서 원당으로 가는 전철, 수녀님과 같이 앉았다. 열차를 기다릴 적에도 수녀님은 제 곁에 있었지만, 같이 앉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좀 당황스러웠다. 수녀님은 묵주를 들고계셨다. 항상 그러시겠지만, 막상 묵주를 들고계신 수녀님과 자리를 함께 하고있다는 게 뭐랄까, 어떤 막연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나 또한 묵주를 들고있었다. 손에 가끔 들기도 하였지만,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묵주였다. 수녀님의 묵주를 보면서 그게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내가 어떻게 수녀님과 같이 묵주를 들고있을 수 있느냐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랬다.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수녀님이 내 곁에 서 계셨고 같이 열차를 타고 같이 않은 것이다. 나의 .. 2022. 10. 4.
구약성경, 출애굽기, 시내 山, 모세, 그리고 '10戒' 이즈음 구약성경을 이따금 씩 들춰보는 건, 얼마 전에 접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시내 山의 위치, 그리고 그와 관련한 성서고고학적 주장에 따른 혼돈 때문이다. 과문한 탓도 있을 것이지만, 내가 지금껏 그에 관해 알고있던 앎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접한 것인데, 말하자면 시내 山의 위치가 그동안 거의 사실처럼 굳어져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거의 문외한인 처지에서나마 나름 한번 확인해보고자 하는 충동이 생긴 것이다. 시내 산이 어디일 것이라는 구약에서의 언급은 해석에 따라 그 위치가 저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지금껏 시내 산으로 굳혀져 천년이 넘게 순례가 줄을 잇고있는 곳은, 그런 혼란을 불식시키고자 약 1500년 전 로마교황청에서 임의.. 2022. 9. 19.
'파차마마(Pachamama)', 혹은 성모 마리아 남미 안데스 토착 원주민들에게는 고대 잉카시대 때부터 그들이 전통적으로 숭앙하고 섬기는 여신이 있습니다. '파차마마(Pachamama)'라는 여신입니다. 영어로 'Mother Earth, Mother Time, World Mother'로 불리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구와 시간을 다스리는 어머니로서의 존재인 여신입니다. 파차마마는 모든 농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관장하고 산과 지진을 다스리면서 땅의 모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창조적 힘을 지닌, 전지전능한 유일의 여신으로 받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파차마마 여신이 15세기 말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 이후 그 양상을 달리합니다. 스페인은 그 땅에 가톨릭을 전파하였고, 원주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파차마마를 성모 마리아(Virgin Mary)로 인식하.. 2022. 9. 5.
Agnus dei, Agnus dei... 8년 전, 그러니까 2014년 9월 4일 오늘 찍은 사진으로, 대구 가톨릭대 병원 입원실 복도다. 그때 어머니가 입원하고 계셨다. 암이 왔는데, 고령으로 수술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놓고 고심 중에 있었다. 전날 밤, 이 병원에 있는 조카사위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수술을 하자고 해 그렇게 결정을 하고는 병실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다음 날 새벽 심란한 마음으로 복도를 걷고있었다. 그때 저 쪽 복도 끝에 어떤 분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큰 분이라는 느낌이 오면서 조심조심 그 분께로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보니 그 분이 뭔가를 누구에게 주고있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문 앞에 와서 보니 그것은 벽에 그려진 예수님 그림이었다. 예수님이 앉아 어린 양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근데 복도.. 2022. 9. 4.
지리산 칠선봉, 그리고... 지리산 능선 상의 한 봉우리인 칠선봉은 나에겐 어떤 징크스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지리산을 갈 때 매번 그 앞에 머문다던가, 지나가면서 칠선봉의 형상 때문인지 뭔가 모를 묘한 느낌을 그 봉우리가 안긴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때때로 예상치 못한 사고를 야기시킨다. 이번에 그랬다. 4일 악천후 속 장터목까지의 이틀 째 종주산행, 칠성봉에 다다랐을 때였다. 세찬 비바람에 젖고있는 칠성봉을, 흐린 눈을 손으로 훔치며 그런 생각으로 올려보는데, 딛고있던 바위 한 귀퉁이가 신발끈에 걸렸다는 느낌과 함께 미끄러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찰라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은 흡사 느린 동영상같은 느낌으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그 순간은 마치 큰 화각으로 조망하듯 나에게는 생생했다. 그 상황.. 2022. 6. 8.
나의 '信仰'이라는 것 처 이모부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아내가 전한다. 재작년인가, 그림을 잘 그리는 그 이모부가 화집을 보내왔길래 전화를 드린 이후 처음 접하는 안 좋은 소식이라 당황스러웠다. 아내로부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리고 아, 어떻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마음 속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성모송’이다. 나 나름의 안타까움에 대한 표현인 셈인데, 내 주변의 안타깝고 불행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일종의 버릇이 됐다. 그렇게 ‘성모송’ 세 번을 읊조리고 난 후 아내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 나에게 ‘성모송’ 기도는 일상화됐다. 거의 매일 입에 달고 산다. 그게 2년 째 접어들고 있다. 이런 얘기를 남들이 들으면, 내가 상당히 독실한 가.. 2022.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