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n(馬山)'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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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n(馬山)29

'오리떼기' - 馬山의 옛 과자놀이, 혹은 사투리 메이저 언론이 오래 된 옛 마산 사투리를 다루고 있다는 게, 마산사람으로서 우선 반갑다. '오리떼기,' 참 오랜 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옛날, 그러니까 1950년대 말, 마산의 성호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많이 했다. 성호동 학교로 올라가는 초입의 나지막한 길가에 아줌마들이 빈 사과궤짝을 앞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서들 설탕과 소다를 쪽자에 섞어 불에 불린 다음 양철판에 붇고는 게임 식으로 우리들을 '유혹'해 사먹게 하던 일종의 과자팔이 놀음이다. 그걸 우리들은 그때 '오리떼기'라고 불렀다. 한참 후 커서도 그 '오리떼기'가 생각이 나 얘기를 하면, 마산사람 외는 잘 모르고 있었다. 한참 설명을 하면 나오는 대답이 대개 '달고나'아니면 '뽑기'라고들 했다. ​ ​ 오늘 조선일보 김윤덕 부장이 '오리떼기'에 관해.. 2021. 4. 25.
馬山 남성동 선창가 '홍콩빠' 외래어로 지명이 불리어지는 곳이 우리나라 주요도시들마다 더러 있다. 예컨대 서울의 '딸라 골목'이 그렇고, 부산의 '텍사스 촌,' 인천의 '차이나타운'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마산에도 있었다. 홍콩 이름을 딴 '홍콩빠'다. 있었다는 과거형이니 사라지고 만 것으로 여겨질 것이지만 그게 아니다. 지금도 그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도시들의 이런 외래어지명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붙여진 것이 아니다. 그곳의 주된 기능성과 관련해 사용자와 이용자 사이에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고 불리어지면서 고착화된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경우 인천 화교들의 주 거주지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의미가 가미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외국어로 된 것은 뭔가 좀 이국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주면서 그곳의 기능성이 강조되기 위한 것이 아닌가 .. 2021. 3. 14.
아파트 馬山할머니 지금 있는 아파트에 21년 째 산다. 세상 인심이 어쩌다 그리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이웃들을 서로들이 잘 모른다. 내 관점에서 보자면, 나의 잘못이 기중 크겠지만 익스큐스를 보태자면 아무래도 상대성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앞집, 옆집 이웃들이 본체 만체 하는데야 어쩌겠는가. 그런 걸 무릅쓰고 먼저 인사를 건네기는 좀 그렇다. 더구나 그런 이웃들이 젊은 세대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참 정갈하고 야무지게 보이는 할머니다. 십년 넘게 같은 동의 아파트에 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그저 눈 인사 정도 만 드린다. ​ 아침 산책을 마치고 귀가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할머니를 만났다. 어디 시장엘 갔다 오시는 모양이다. 두어마디 주고 받.. 2021. 2. 3.
<마산문화연감(馬山文化年鑑)(1956)> (국회도서관이 코로나로 1년 째 휴관 중이다. 그 도서관에 있던 1956년도 판 이 어느 날 문득 사라진 게 2019년이다. 지난 해 도서관이 휴관되기 전까지도 나는 계속 그 책을 찾았었고, 도서관 직원들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그 연감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서관 측은 찾아지는대로 연락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종무소식이다. 찾았는데, 코로나로 인한 휴관 때문에 연락을 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아예 찾지를 못했는지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로서는 아무튼 도서관이 개관되면 우선적으로 할 일이 그 연감을 찾아보는 일이다. 코로나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아래 글은 그 연감에 관해 2019년 2월에 쓴 글이다.) ......................................... 2021. 2. 2.
馬山의 풍물과 사람 얘기를 담은 <창동 야화2> 마산의 劇團 ‘마산’ 이상용(李相龍) 대표가 책을 냈다. 마산 내음이 물씬 풍기는 다. 2015년 1권을 낸지 5년 만에 완결편인 2권을 낸 것이다. 오늘 책을 받았다. 방금 펴든 책에서 이 대표의 마산 사랑의 집념이 묻어난다. ​청동(倉洞)은 예나 지금이나 마산의 중심지다. 인근의 선창을 중심으로 한 마산 상권의 중심지였고, 문화와 예술의 요람지였다. 물론 지금은 마산이 많이 쇠락했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도 창동은 여전히 마산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산이라는 도시의 지명은 비록 사라졌지만, 창동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마산의 발전과 쇠락을 지켜 본 마산 역사의 증거지인 것이다. 그러니 마산 사람들의 가슴에 마산을 유독 각인시키는 곳이 바로 창동이다. 이곳에서 자란 이 대표는 특히 창동에 많은 .. 2020. 12. 8.
'在京馬山學友會' 재경마산학우회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 모임은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마산출신 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로, 그 연원은 꽤 오래됐으니 역사성은 있다. 1957년 '마산문화협의회'에서 펴낸 '마산문화연감'에 따르면 재경마산학우회는 1952년 결성됐다. 초대회장은 마산고 8회 졸업생인 박후식이, 2대 회장으로는 현 동서식품의 이홍희 회장이, 그리고 3대 회장은 마산상고 출신의 박수복이 맡았는데, 이홍희는 재경마산학우회 결성 당시 회칙과 조항을 만들었다. "悠悠한 天壤과 遙遙한 古今의 眞理를 探究하여 諸先輩가 築造한 偉大한 勳業을 繼承發展시키고져..."고 시작되는 회칙 전문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문으로 전해진다. 초창기 학우회의 활동과 관련해서 '마산문화연감'은 1955년 8월에 '문학강좌'를, 그리고 9월에는 ..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