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 카테고리의 글 목록 (13 Page)
본문 바로가기

misce.78

斜 陽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소설 '사양(斜陽)'에는 우환의 전조인 것 처럼 뱀이 더러 나온다. 가즈꼬가 집 나무에서 뱀 알을 발견해 태우기도 한다. 그 후 어머니가 병사하고 남동생은 자살한다. 집안 몰락, 즉 서서이 사그라져 가는 '사양'의 전조이던가. 오늘 새벽, 부엌에서 아내가 놀라해 한다. 쌀벌레 때문이다. 쌀벌레가 쌀통 주변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마누라는 쌀벌레 때문에 쌀에 통마늘을 넣어놓고 있던 참이었다. 왜 문득 '사양' 소설이 떠올려졌는지 모르겠다. 우환이 뱀 처럼 또아리를 틀고있는 건 아니겠지. 이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불 같은 땡볕 여름이 지나 가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다자이 오사무의 코스모스에 빗댄 그 황량한 가을 수필을 읽고 잡다. 2020. 8. 5.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베이(eBay)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해는 글로벌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사람이 앓고 죽는 문제가 우선시 되지만, 이를 포함해 정치, 외교,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부분에서 야기되는 폐해는 지금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그 가운데 좀 두드러지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국제적으로 오고가는 물품의 이동, 즉 물류의 이동(logistics)이 아주 제한적이거나 어렵게 되고있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항공 운항을 중단하거나 제한하고 있는 탓이다. 나라 간에 물류가 어렵게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각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인간 삶에 필요한 각종 물질적인 것의 사용이나 혜택이 차단되거나 제한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류의 국제적 이동이.. 2020. 6. 22.
이사도라(II) 갑자기 ‘개츠비’라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날 밤 그 방송의 주제가 바로 ‘개츠비’였다. 이 병장은 어떻게 그 걸 맞췄을까. 그 여자 성우는 촉촉한 목소리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를 얘기하고 개츠비의 사랑을 얘기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병장이 갑자기 무슨 말을 중얼거린다. 가만 들어보니 영어다. "My life has got to be like this, is got to keep going up." 후에 알았지만 그 소설에 나오는 대사문장의 하나다. "내 인생은 이렇게 되어야 해. 계속 그렇게 될 거야." 놀라운 것은 그 여자 성우가 흡사 따라 하듯 방송에서 그 문장을 영어로 말하고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정말 신통하지 않은가. 이 병장은 방송을.. 2020. 6. 8.
파란대문 집 그 집을 그곳에서는 파란대문 집이라고 불렀다. 티피(TP)라고하는, 교통초소가 있는 사거리에서 사단사령부로 가는 길 왼편골목의 끝 집이었는데, 대문이 파란색이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색이 바래져 파란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까운 대문이었다. 그것도 대문이라기보다 쪽문이었다. 아무래도 드나들기가 남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라, 큰 문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고 숨듯이 오갈 수 있는, 없는 듯 한 문이었다. 그곳 부대로 전출을 갔을 때 그 집을 꼬집어서 하는 고참의 주의사항이 있었다. 누구든 그 부대에 오는 사병이면 항상 당부되는 사항이라고 하는데, 그 파란대문 집은 얼씬거리지 말라는 것. 고참의 그 말이 있고 난 후 난데없이 위생병이라는 병장 하나가 내무반 복도로 오더니 고참의 말에 덧붙인다... 2020. 6. 7.
이사도라(I) 서부전선 그곳 OP의, 내가 속한 중대본부벙커 곁에 그들의 막사를 겸한 벙커가 있었다. 그들은 북쪽을 향해 방송을 하는 이른바 대북방송요원들로, 특전사 소속이었다. 시멘트로 지은 벙커는 오래 됐기도 했지만, 방음장치가 썩 좋지 않아, 그 쪽에서 주고받는 잡담이라든가 방송 내용 등이 우리 방으로 잘 들려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들리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틀어놓는 라디오 소리였다. 우리 쪽 방송 중 필요한 것은 매시간 대형 스피커를 통해 북쪽으로 쏘곤 하였는데, 그런 방송이 아니더라도 취침시간을 빼 놓고는 라디오를 항상 틀어놓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제 어떤 방송이 나오고 어떤 방송을 쏘는지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었는데, 그 중에 예컨대 매일 정오 무렵이면 나오는 방송이 있었다. '눈물 .. 2020. 6. 5.
양평 '두몰머리'에서 양평은 ‘물의 고장’입니다. 남한강이 흐르고 북한강이 흐릅니다. 이 두 물이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일컬어 ‘두물머리’라 하지요. 이렇게 이름지은 이 땅 사람들의 부드러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두 물이 만나는 것은 자연의 흐름이요 이치일진대 굳이 이를 이렇게 이름지은 것은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간의 상생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두물머리에 황포돗배가 한 척 떠 있습니다. 떠 있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떠 다니지 않는 황포돗배는 옛날의 두물머리로 우리들을 이끌어 갑니다. 저 배에 몸을 실었던 한 분이 문득 생각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지요. 인근 남양주 땅의 마재에서 태어나 18년 강진 유배를 제하고는 평생을 마재에서 사셨던 다산 선생은 한강 물을 참 종아하셨던 분입니다. 그가 남.. 2020.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