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인 '悔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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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인 '悔恨'

by stingo 2023. 8. 17.

어제 장모님 하늘로 보낸 후 사흘째, 화정 성당 앞을 지나며 예수님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신앙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카톨릭식으로 치러진 장모님 장례식의 과정 중
나의 행태가 부끄럽게 돌이켜졌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장례식에서의 신앙의식과 관련한 나의 자세와 행태에 관해 부끄러움과 회한적으로 말한다면,
한 마디로 어정쩡함 내지는 심하게 말하자면 무관심이었다.
내가 독실했던 장모님의 사위로서 장례식에 임했던 것을 표현하자면 단연코 그렇다는 얘기다.

카톨릭식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도(煉禱)의 연속이다.
성당에서 나와 바치는 연도는 빈소에서부터 유해가 안치되는 장지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그 과정 과정에서의 연도가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족들을 포함해 함께들 바치는 연도에 참석하지 않고
바깥에서 비켜선 자세로 그저 듣기 만 했다. 연도는 길고 그에는 구슬픈 운율이 있다.
나는 그 게 웬지 슬프고 어둡게 들려서 싫었다. 그리고 지겨웠다.




장모님의 장례식에는 미사가 세 번 있었다. 빈소에서 한 번, 그리고 성당에서 두 번이다.
나는 이 세 번의 미사에도 한 번도 참석하질 않았다. 출상하기 전날 진행된 빈소에서의 미사에서는 주변의 주의까지 받았다.
미사에 참석하기는 커녕 대구에서 올라 온 동생 내외를 앞에 두고 술을 마시면서 주고받는 얘기들이 미사를 방해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미사는 나로서는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었다. 고백성사를 할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나는 그 마저도 그냥 그런 식으로 보낸 것이다.

장모님을 의정부 선영에 안치하고 집으로 와 허전한 마음으로 혼자 멍청히 앉았을 때 비로소 그런 생각이 회한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잘못했고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나름으로 회개를 생각했다. 한 방법이 떠올랐다.
삼우 날  아침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고 장지를 다시 찾기로 했으니, 그 날 미사에 참석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게 바로 그저께인데, 하지만 이 날도 아내만 가고 나는 그냥 집에서 머물렀다.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장모님이 입원하시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묵주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 묵주는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묻히실 때까지 내 호주머니와 손에 있었고, 나는 중요한 과정, 그리고 고비마다에 나름으로의 묵주기도를 바쳤다.
나는 3년을 훨씬 넘게 매일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로써 말하자면
이 건 나 만의 장모님에 대한 일종의 신앙의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장모님 장례의식에서의 나의 신앙적 소홀감에 대한 익스큐스로 삼으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나에게 신앙, 그러니까 가톨릭 신앙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있다.
화정성당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면서도, 나는 어쩌면 한편으로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는
예수님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묵주기도#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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