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E. 힐러리와 T. 노르게이 에베레스트 첫 등정(1953)
본문 바로가기
today in world history

(5월 29일) E. 힐러리와 T. 노르게이 에베레스트 첫 등정(1953)

by stingo 2021. 5. 29.

1953년 5월 29일 오늘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와 네팔인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가 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한 날이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는 해발 29,035피트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최초의 산악탐험가가 되었다. 영국 원정대 멤버인 두 사람은 정상 아래 27,900피트 지점에서 밤을 보낸 다음 날 마지막 정상 공격을 감행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날인 6월 2일, 그들의 에베레스트 등반 성공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영국인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Sir Edmund Hillary(1919-2008)

                                                        Tenzing Norgay(1914-1986)

 

네팔과 티벳의 경계에 놓여있는 에베레스트는 티벳 사람들에 의해 ‘땅의 어머니 여신’인 초모-룽마(Chomo-Lungma)라고 불리는 이 산을, 영국인들은 19세기 남아시아의 영국인 조사관인 조지 에베레스트(George Everest) 경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지구의 대기권 공기의 3분의 2 수준으로, 제트 여객기의 순항 고도에 있다. 그곳의 산소 농도는 매우 낮을 뿐더러 기온은 극도로 춥고 날씨는 예측할 수 없이 위험하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21년 영국의 원정대가 티베트 고원을 가로질러 에베레스트 못 미처의 산기슭까지 400마일을 걸어간 것이다. 맹렬한 폭풍 속에서 조지 레이 멀로리(George Leigh Mallory)가 정상 가까이에 등반 가능한 경로를 발견한다. 그 얼마 후에 한 기자의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이 멀로리였다.

 

1922년 등반가 조지 핀치와 제프리 브루스가 27,000 피트 이상의 인상적인 높이에 도달했고, 그 해 멀로리의 새로운 등정 시도에서 7명의 셰르파들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1924년, 세 번째 에베레스트 원정이 영국에 의해 시작되었고, 등산가 에드워드 노튼은 인공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정상에서 900피트 떨어진 28,128피트의 고도에 도달했다. 4일 후, 멀로리와 앤드류 어바인은 정상 공격을 감행했고 그들은 정상 부근에서 실종된다. 1999년 멀로리의 시체가 에베레스트 산에서 발견되었는데, 추락으로 뼈들이 으스러진 상태였다. 멀로리나 어바인이 정상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티베트의 북동부 능선 루트를 통해 몇 차례 더 등정 시도가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티베트는 외국인들에게 폐쇄되었다. 1949년, 네팔은 외부 세계에 문을 열었고, 1950년과 1951년 영국 원정대는 동남부 능선 루트를 탐험했다. 1952년 스위스의 한 탐험대가 쿰부 빙폭 등정에 성공한다. 당시 레이먼드 램버트와 텐징 노르게이 두 명은 사우스 서밋 바로 아래인 28,210피트에 이르렀지만 물자 부족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스위스 원정의 부분적인 등정 성공에 충격을 받은 영국은 1953년 존 헌트 대령의 지휘 아래 대규모 원정대가 꾸려진다. 영국 최고의 등반가들과 텐징 노르가이처럼 경험이 풍부한 셰르파들 외에도, 이 원정대는 뉴질랜드인 조지 로우와 에드먼드 힐러리 같은 경험이 풍부한 산악인들을 고용했다. 원정대원들은 특수 절연 부츠와 의류, 휴대용 무선 장비, 개방 및 폐쇄 회로 산소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일련의 캠프를 차린 이 원정대는 1953년 4월과 5월에 산에 올랐다. 쿰부 빙폭을 통해 새로운 통로가 만들어졌고, 등반가들은 약 26,000피트에서 서부 Cwm을 타고 로체 정면을 가로질러 사우스 콜을 향해 나아갔다. 5월 26일, 찰스 에번스와 탐 브로딘은 에베레스트 정상 300피트 부근에서 정상 공격을 감행한다. 하지만 산소호흡기 오작동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5월 28일 텐징과 힐러리는 27,900피트에 ‘하이 캠프‘를 차렸다. 극한의 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보낸 두 사람은 터벅터벅 걸어가 오전 9시 사우스 서밋에 도착했고, 약 1시간 후 약 40피트 높이의 가파른 바위 스텝을 밟았다. 정상 아래 이른바 ’헐러리 스텝‘이다. 힐러리는 밧줄을 던졌고 노르게이는 그 뒤를 따랐다. 오전 11시 30분쯤, 힐러리와 노르게이는 세계 정상에 도착했다.

 

 

성공 소식은 원정대의 베이스캠프에서 남체 바자르의 라디오 포스트로 급히 보내졌고, 런던으로 암호 메시지를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 전날인 6월 1일에 이 업적을 알렸다. 다음날, 그 소식은 전 세계에 퍼졌다. 그 해 말, 힐러리와 헌트는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관련기사: 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hillary-and-tenzing-reach-everest-summit

 

Edmund Hillary and Tenzing Norgay reach Everest summit

At 11:30 a.m. on May 29, 1953, Edmund Hillary of New Zealand and Tenzing Norgay, a Sherpa of Nepal, become the first explorers to reach the summit of Mount

www.h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