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인사동 시절, 잘 다니던 와인 집이 있었다. 수도약국 못미쳐 골목 안으로, 지금은 가나아트 화랑으로 뚤려진 골목 막다른 곳에 있던 집이다. 이 집은 모차르트로 꽤 유명한 주점이었다. 으슥해진 밤, 골목 길로 들어서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 나왔다. 우리들은 그 집 주인 아주머니를 '모차르트의 모차르트'라 불리워지는 클라라 하스킬로 불렀다. 깡마른 체구가 우선 닮은 데다 음악을 포함한 모차르트에 대한 모든 지식이 풍부했다. 우리들이 밤이 이슥해 그 집을 가는 것은 물론 와인을 마시기도 한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모차르트를 듣기 위한 것이었다. 한 잔의 와인을 놓고 모차르트를 들으면서 우리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느낌들이었겠지만, 한 가지 일치하는 것은 있었다. 그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이었다. 그에는 다른 이견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 '로만체(Romance)'을 들을 때는 그 절정이었다. 그 단조 풍의, 뭔가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안온함과 구원의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듯한 그 선율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접근 못할 영역의 것이라고 서로들 찬탄의 말을 주고 받았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모차르트는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근자에 어떤 책을 보고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논란이 있다는 점을 알게됐다. 조선일보 음악담당 김성현 기자가 쓴 '모차르트'라는, 모차르트의 생애와 음악에 관한 책이다. 이 책도 물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는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모차르트를 분석함으로써 모차르트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게 흥미를 준다.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생각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모차르트는 과연 타고난 천재였을까, 아니면 아버지 레오폴트 덕분에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을까를 물으며 답하고 있다. 낭만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19세기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별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상을 잡시 방문한 음악적 천사'는 모차르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였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학자 맥마흔이 언급한 "천재야말로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말하자면 시대적인 산물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세까지 세상사를 주관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유일신의 후퇴와 근대적 천재의 서로 맞물려져 있다는 것이다. 당시 천재를 우주의 신비를 해독하거나 신의 목소리를 듣는 예언자이자 수로자, 구원자로 묘사하는 이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모차르트를 신의 소리를 듣는 음악의 천사로 이해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럽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초반까지도 천재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선천성에 관해 이견을 제시한다.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재적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면, 그의 두 아들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재능을 물려받지 않았겠냐는 것인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호주 작가 아그네스 셀비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두 아들은 음악적 재능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저 평범하게 세상을 살다 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약간의 견강부회함이 느껴진다. 천재라 해서 반드시 그 유전인자가 대를 잇게된다는 법이 있겠느냐는 점에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해 결론적으로 '만들어진 천재'라는, 다소 복합적인 용어로 모차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모차르트가 어릴 적부터 음악에 뛰어 난 소질을 보인 신동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소질을 눈여겨 본 아버지 레오폴트의 선구안적인 교육과 기획력, 그리고 예술적 욕망에다 모차르트의 부단한 노력이 더해 진 게 모차르트라는 것이다. '18세기 유럽'이라는 드넓은 세상도 모차르트 음악의 배경이라고 저자는 보태고 있다. 말하자면 천재와 신동이라는 수식어 아래, 아버지의 교육과 여행, 그리고 모차르트 자신이 부단히 노력도 했던 삶 속에서 한편으로 대립과 좌절을 겪으며 그런 경지에 이른 복합적인 캐릭터가 곧 모차르트라는 것이다.
저자는 덧붙여 모차르트 음악의 천재성 속에 모차르트의 '여행'을 중요시 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35년을 사는 동안 17차례 여행을 다녔다. 총 여행기간이 10년 2개월 2일, 3,720일에 이른다. 모차르트는 인생의 3분의 1을 여행으로 보낸 '길 위의 삶'을 살았다. 이런 여행의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그의 음악은 성숙해져 갔던 것이다. 특히 1769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떠난 이탈리아 여행은 모차르트가 신동 연주자에서 본격적인 작곡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이 여행에서 그는 종교음악과 오페라를 깊이 받아들였고, 훗날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같은 걸작을 쓸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모차르트가 생전에 쓴 편지에서 그의 '여행'에 관한 한 구절이 나온다. "...특히 예술과 학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여행을 할 수 없다면 비참한 존재일 뿐..."
'모차르트' 이 책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낀 부분은 모차르트의 후손에 관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26세 때인 1782년에 20세의 콘스탄체와 결혼해 여섯 자녀를 두었다. 그 중 네 명을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 칼 토마스와 프란츠 크사버만 생존해 비교적 긴 생들을 살았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날 때 7세였던 장남 칼 토마스는 프라하에서 공부를 마친 뒤 1797년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무역회사에 수습사원으로 입사하는 등 회사원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지만,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중단한 후 평범하게 살다 1858년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둘째인 크사버도 음악적인 재능으로 잠시 반짝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 역시 평범하게 살다갔다.
인사동에 있던 그 집은 십여 년 전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술들이 취해 좀 왁자지껄해지면 주인 아주머니는 반드시 20번을 틀었다. 음악이 흐르다 2악장 '로만체' 부분에서 술집 분위기는 숨을 죽인 듯 완전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카운터 쪽 어둠 속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던 그 아줌마도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다. 모차르트로 꽉 찼던 그 집의 풍경이 이 책을 대하니 문득 기억에 떠 오른다. 하스킬 그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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