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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 岳 雲 海 중청으로 가는 설악의 산길. 막바지가 끝청이다. 이쯤이면 거진 다 왔다. 그러나 끝청 오르기가 예사 일이 아니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지친 걸음은 흐느적거린다. 여기서 숨을 고르고 가다듬어야 한다. 끝청에 올랐을 때,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있었다. 운해(雲海)다. 공룡, 용아의 내설악 쪽은 해걸음, 막바지 해를 머금은 구리 동빛이지만, 외설악 쪽은 구름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 장관에 말문이 막힌다. 어느 봉우리 하나 소홀하지 않게 하얀 구름이 촘촘히 흘러 들어 바다를 이뤘다. 구름바다 어느 가장자리엔 황혼이 스며들어 붉은 빛이다. 그 바다 위로 우수수 바람이 불면, 구름 물결도 우수수 바람결 따라 흐른다. 그 흐름은 지친 우리들을 어루만져 주는 몸결이다. 풍덩 뛰어들어 안기고 싶은 부드러운 몸.. 2024. 11. 15.
사진 몰래찍기(taking a picture clandestinely) 사진은 찍고 싶다고 아무데서나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한 그것은 더욱 그러하다. 화정동 중앙공원에는 어르신분들이 많이 나오신다. 대개는 혼자다. 아니, 꼭 혼자는 아니다. 반려견과 함께 나와 벤치에 앉아들 계시는데, 오늘, 낙엽이 우수수 날리는 가을 풍광에 어우러진 그 모습들은 그래서인지 쓸쓸해 보였다.  공원을 한바퀴 돌다가 어느 벤치에 앉아 계시는 한 어르신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무표정에 생기도 없이 개목줄을 잡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 모습이, 올망쫄망하게 생긴 반려견과 대조적이어서 그랬다. 나는 어르신 맞은 편에 카메라를 든 채 앉았다. 어르신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무기력한 시선에서나따나 나를 경계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2024. 11. 4.
가을빛, 혹은 秋色 가을빛, 혹은 추색. 오늘 화정동 중앙공원을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섰다. 눈에 들어오는 가을 풍광, 그러니까 추색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갤럭시 S21 Ultra, 아래 사진은 Leica X Vario 경조흑백) #화정동중앙공원 2024. 11. 3.
陽과 陰 아침 산책길의 동네 풍경. 뭔가 좀 허전하고 빈 듯하다. 하늘엔 형형색색의 구름이 가득한 데도 왜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올 여름 뜨거운 폭염은 머리와 몸을 눅진눅진 미끈미끈한 그 무엇으로 가득 채우는 한바탕 소동이었다. 그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니 그런 것일까. 양이 있으면 음이 자리하는 게 이치라는 게 이런 것인가. 머얼리 마리아수도회 성당이 백청 하늘아래 다소곳하게 보인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 보았다. #능곡 2024. 9. 22.
부산, 1950년 1950년 6.25동란 중의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한 거리 풍경. 젊고 아리따운 아낙네가 꽃인지, 푸성귀인지 모를 그 무엇을 한 광주리 머리에 인 채 잰 걸음으로 가고 있고, 어린 슈사인보이가 구두닦이 통을 들고 생각에 잠긴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대조적이다. 둘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건물의 이름이 보인다. ‘Hotel Mijin.’ ’미진호텔‘인데, 동란 중의 호텔이었다면 아마도 미군 장교들의 숙소였을 것이다. 이게 지금 남포동에 있는, 꽤 오래 된 ’미진모텔‘의 전신인지는 모르겠다. (Photo from group ‘The Korean War’s Chosin Reservoir’ on Facebook) #부산미진호텔 2024. 9. 2.
폭염, 그 여름의 끝자락 사진에 대한 욕구는 그런대로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집 거실 테이블 잘 보이는 곳에 놓여진 카메라들을 거의 매일 그런 마음으로 보고 만져본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오늘 오후 국회도서관을 나오면서 지나는 정원 길에 문득 배롱꽃이 눈에 들어왔다. 폭염의 그 여름이 떠나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애써 가져보는, 그 심중으로 바라보는 배롱꽃, 배시시하다는 느낌이 뜬금없이 들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았다. ​ 그리고 그 아래, 마즈막 발산하는듯한 폭염속 강렬한 태양을 피해 숲속에 앉아있는 한 노인의 모습에서도 끝물 여름의 흔적이 어른거리길래 얼른 찍어 보았다. #폭염여름의끝 2024.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