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71 ‘저주(Curse)’로 읽혀지는 셰익스피어의 비문? 셰익스피어(1564-1616)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Epitaph)을 저주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물론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종의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요.세계 최고의 극작가의 마지막 안식처인 영국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의 ‘성삼위일체(Holy Trinity)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전설적인 대문호에게 어울리는, 그러한 한편으로 불길하게 여겨지는 일종의 경고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 좋은 친구여, 여기 묻힌 먼지를 파헤치는 것을 참아라. 이 돌을 아끼는 자는 복을 받고,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2025. 6. 20. 어떤 지인의 訃告 오진근이라는 분이 계셨다. 2011년 내가 마지막으로 보기 전까지 그 분은 회현지하상가에 자기 이름을 내건 카메라 수리소를 했다. 나하고 알게된 것도 물론 카메라 수리 때문이다. 나는 1998년 하반기부터 클래식카메라 딜러를 하면서, 서울 장안의 카메라 수리 잘 하는 분들과 교류가 있었다. 오 씨 이 분도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는 그 당시 청계천 시계골목에서 카메라 수리를 하고 있었다. 오진근 이 분은 내가 그때까지 만났던 카메라 수리하는 분들 가운데 실력이 제일 나았다. 무뚝뚝하고 말은 없었으나 기술 하나는 뛰어났다. 나보다 네살 아래였었기에 그는 나를 ‘형님‘이라 했고,나는 오 기사라고 불렀다.서로를 차츰 알게되면서 같이 술도 많이 마셨다. 오래 된 독일 카메라를 주로 다루는 딜러 입장에서는, 수.. 2025. 5. 3. 한 여가수의 죽음 오늘 미명의 새벽에 받은 부음. 친구 여동생의 죽음이다. 친구는 “동생이 무지개 너머로 갔다”고 했다. 어스럼한 미명 속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언뜻 내 눈에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친구의 짤막한 이 한 줄의 글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글 속에 짙은 슬픔이 묻어나고 있었다. 친구 여동생은 1970, 80년대 한 때를 풍미하던 가수였다. 유가화라고, 1980년대 초반 ‘나도 모르게’라는 노래로 세상에 각인됐던 가수다. 이 노래를 얘기하면 이 가수를 기억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유가화는 그러나 세상에 묻혀 산 세월이 길었다.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경기도 안성에 살고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몇 해 되지 않았다. 친구는 박상호라고, 나의 마산중학교 동기다. 1967년 졸업 후 만나지 못하다가, 유가.. 2025. 2. 23.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 dies at 73 올리비아 핫세가 그저께 세상을 떴다는 걸 늦게야 알았다. 나의 젊은 시절에 꼭꼭 담겨져 있었던 소녀를 70줄 나이에 새삼 돌이켜 보며 그녀를 떠올려 본다. 올리비아 핫세 하면 영화 이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이 영화 속 레오나르드가 부르는 노래 속 가사, 그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꺼진 황량한 느낌이다. 올리비아 핫세는 나와 동갑인 갑장이었다. 1970년 대학교 1학년 때 영화를 본 후 그런 사실을 알고 택도 없는 동병상련에 젖기도 했는데, 지금 새삼스레 그 생각이 든다. RIP…#OliviaHussey 2024. 12. 29. 1세대 락 뮤지션(Rock Musician) 김홍탁 선생 별세 나라가 계엄령이니 탄핵이니 하며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와중에 안타까운 한 죽음을 뒤늦게 알게됐다. 우리나라에서 그룹사운드 시대의 문을 연 1세대 락 뮤지션이자 걸출한 기타리스트인 김홍탁 선생이 향년 80세로 세상을 뜬 것이다. 김홍탁 선생에 대해 지금의 젊은 계층들은 생소하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나, 내 또래 장년 나이의 분들은 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김홍탁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하더라도, ‘해변으로 가요‘ ’초원의 빛’ 등 선생이 만들고 직접 불렀던, 1970년대 초를 풍미한 이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면 선생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1970년에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김홍탁 선생에 대해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나름으로 잘 안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그룹.. 2024. 12. 16. 아버지와 어머니의 47년 만의 해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났다. 근 반세기 만인 47년 세월이 흐른 후다. 두 분은 백골로 상면을 했다. 나는 그게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하늘나라 거기서는 서로 좋은 모습과 차림으로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두 분의 모습은 서로 언제 적의 것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합장은 10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어머니는 3일장을 치룬 후 경북 구미의 가톨릭묘원에 모셔졌다. 12일 어머니의 유골이 홀로 모셔졌고, 나는 그 앞에서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아버지 곧 오실 겁니다.아버지는 부산 팔송의 부산시립묘원에 누워 계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게 1977년어니 47년 동안이나 홀로 팔송 땅에 누워 계셨다. 그 아버지를 13일 이장을 통해 깨웠다. 그리고 .. 2024. 12. 15.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