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났다. 근 반세기 만인 47년 세월이 흐른 후다.
두 분은 백골로 상면을 했다. 나는 그게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하늘나라 거기서는 서로 좋은 모습과 차림으로 만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두 분의 모습은 서로 언제 적의 것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합장은 10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어머니는 3일장을 치룬 후 경북 구미의 가톨릭묘원에 모셔졌다.
12일 어머니의 유골이 홀로 모셔졌고, 나는 그 앞에서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아버지 곧 오실 겁니다.
아버지는 부산 팔송의 부산시립묘원에 누워 계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게 1977년어니 47년 동안이나 홀로 팔송 땅에 누워 계셨다.
그 아버지를 13일 이장을 통해 깨웠다. 그리고 다음 날인 14일 길을 달려 군위 가톨릭묘원의 어머니 곁에 모셨다.
팔송 땅을 떠나면서 많은 감회에 젖었다. 1977년 7월 아버지를 그곳에 묻을 때 산뻐꾸기가 울었다.
나는 그 뻐꾸기 울음과 함께 울었다.
13일 아버지와 함께 거기를 떠나는데, 역시 산뻐꾸기 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부모님 합장식에 신부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다. 장영일 크리산도 은퇴 신부님이다.
나를 보시더니 대뜸 묻는 말씀이 그거였다. “성당 안 나가지요?”
정곡을 찌르는 신부님의 그 물음에 나는 이리저리 돌릴 말도 없이 “예!”라고 대답을 했다.
신부님은 그런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보시더니 대뜸 약속을 하자 하셨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새끼손가락 걸기를 제안하셨다. 나는 신부님과 새끼손가락 걸기를 했다.
무슨 약속인가에 대한 신부님의 말씀은 없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신부님은 나와 그렇게 한 후 또 물었다. 아버지는 비신자인데,
그러고서도 어머니와 함께 천국에 갈 수 있을까고 물었다.
나는 신부님의 그 물음에 답을 하기가 어려워 머뭇거리고 있는데, 신부님은 명확한 어조로 말씀을 하셨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만나면서 이미 천국에 가셨습니다”고 했다. 좀 의아해 하는 나에게 신부님은
십자가에 목박혀 돌아가실 때 예수님과 함께 처형을 당한 그 옆의 두 도적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그 얘기로써 신부님은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한 것인데,
나는 언뜻 좀 수긍키가 어려웠음에도 고맙다고 했고, 신부님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박명주아네스#군위가톨릭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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