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계엄령이니 탄핵이니 하며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와중에 안타까운 한 죽음을 뒤늦게 알게됐다. 우리나라에서 그룹사운드 시대의 문을 연 1세대 락 뮤지션이자 걸출한 기타리스트인 김홍탁 선생이 향년 80세로 세상을 뜬 것이다. 김홍탁 선생에 대해 지금의 젊은 계층들은 생소하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나, 내 또래 장년 나이의 분들은 선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김홍탁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하더라도, ‘해변으로 가요‘ ’초원의 빛’ 등 선생이 만들고 직접 불렀던, 1970년대 초를 풍미한 이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면 선생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1970년에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김홍탁 선생에 대해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나름으로 잘 안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그룹사운드인 ‘키보이스‘를 결성해 ’해변으로 가요‘ ’정든 배’ 등을 불러 히트시킨 게 1960년대 말이다. 그러니 나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때부터 선생의 음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선생과 이어지는 조그만 인연도 있다. 같은 하숙집에 살던 나보다 2년 위인 과천이 고향인 한 선배가 당시 락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 선배가 김홍탁 선생을 스승처럼 여기며 받들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그 선배 방에 놀러가면 선생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은 선생과 상면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1970년대 초 명동 ‘오비스캐빈‘을 선배를 따라 갔다가 거기서 선생을 뵈었고, 인사까지 한 것이다. 그 후 선생이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나는 선생을 잊다시피 하고 살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1970년대 초까지 선생은 ’히파이브‘에 이은 그룹사운드 ’히식스‘ 리더를 맡으며 많은 노래를 발표했고, 그의 이런 음악활동 과정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최 헌 등을 발탁해 우리나라 락 음악과 대중가요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내가 다시 김홍탁 선생을 만난 건 최근이다. 우연히 유튜브를 서핑하다, 선생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거기에서 김홍탁 선생을 다시 만난 것이다. 선생이 운영하는 ’김홍탁TV’는 연조가 5년이 넘어 있었다. 그러니까 선생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계속 음악활동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선생을 다시 만나면서 추억에 사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선생과 함께 그룹 활동을 했던, 베이스 기타리스트 조용남 선생 등을 다시 뵙는 게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선생의 유튜브를 보면서 나는 선생이 여전히 재즈나 락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게됐고, 그것이 선생 인생의 지향점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 한편으로 선생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속된 말로 한물간 잊혀진 뮤지션들을 불러내 근황을 살피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고, 특히 최 헌 추모음악회를 개최하는 등을 통해 나는 선생의 사람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게 나로서는 퍽 감동적이었다.

선생의 유튜브에서의 이런 활동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었다. 산소코걸이를 하고 계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폐암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폐질환을 앓기 때문에 그럴 것이지만, 병색이 느껴지는, 하지만 그래도 열정이 가득 깃든 목소리로 얘기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이어서 나는 선생의 유튜브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어머니 상을 당해 몇날 집을 떠나있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 선생이 지난 7일 세상을 뜬 것이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아직도 선생의 죽음이 실감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의 유튜브를 계속 보고 있다.

선생 돌아가시고 난 후 선생의 유튜브를 보면서 자주 착각을 일으킨다. 전에도 물론 그러했겠지만, 선생 유튜브는 옛 영상과 근자의 것을 섞어 보내고 있다. 나는 5년 전 선생이 건강했을 적의 영상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3주 전 탤런트 정한용과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서는 선생의 피폐해져 가는 건강상황을 안타까움 속에서 우려하기도 하는데, 문득 아, 선생이 시방 이 세상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을 새삼 추스려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3주 전 탤런트 정한용과의 인터뷰 영상이 선생이 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이었건 것이다.
김홍탁 선생의 명복을 빌어본다.
#김홍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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