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人이 된 한 친구의 그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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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人이 된 한 친구의 그림, 그리고...

by stingo 2022. 11. 26.

졸지에 나는 고향에서 발간되는 어느 신문의 '오보 유발자'가 됐다.
어제 그와 관련한 처리의 마무리 과정에서 아주 뜻밖의 좀 우울한 반전이 있었다.
어쨌든 담당 기자에게 나의 불찰로 인한 사과를 했고,
그 기자도 쿨하게 나의 사과를 받아주면서 데스크와 상의해 어떤 식으로든
코렉션(correction)을 하겠다고 했다.

일의 발단은 그림 한 점이다.
고향 신문 그 기자가 어떤 기사를 기획 취재하는 과정에서 어디선가 나의 글을 보고 문의를 해왔고,
나는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 기자는 나의 글에 함께 달린 그림 한 점을 게재하겠다면서,
그 그림의 출처를 물었다. 나는 그 그림이 현재 아마츄어 화가로 활동 중인
나의 고등학교 동기의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알려주었고 그렇게 해서 신문에 게재됐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산 홍콩빠' 안삼현(1952-2021)

 

그런데 기사가 나간 후 문제가 생겼다.
그 기사를 본 동기가 거기에 실려진 그 그림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급히 알려온 것이다.
나의 불찰은 이것, 말하자면 그 그림이 그 동기의 것이라는 나의 확신이 잘못된 것이었다.
신문에는 그 그림이 그 동기의 것으로 설명과 함께 못 박혀 나간 것, 그게 오보였던 것이다.
물론 사진 한 장 잘못 나간 것이니 사소한 실수일 수는 있다. 하지만 신문에서는 그게 아니다.
자칫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 바로 신문의 오보다.

나와 신문사와 그 기자 모두들 당황했다.
일단 그 신문사 인터넷판에서는 그 그림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즉시 내렸다.
종이신문이 문제였다.
그건 이미 종이라는 물성의 기사로 나간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보라는 걸 밝히고 정정기사를 싣는 방법밖엔 없었다.
신문사와 그 기자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러면 그 그림을 그린 작가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린 실제 작가가 이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그 작가가 누구임을 밝히고 사과문을 게재하는 게 순서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그림의 출처와 작가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어제 하루를 온전히 그 일에 매달렸다.
그 그림의 작가를 알아내기 위해 그 그림 자체로 알아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궁극적으로 나에게 그 그림이 전달된 배경을 살펴보면 뭔가 단서가 잡힐 것 같았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옛 카톡 메시지를 한참을 뒤졌으나 사라진 것들이 많아 찾아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 그림을 동기친구의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동기친구는 자신의 그림을 곧잘 보내오곤 했다. 그 친구 그림에 대한 코멘트를 몇 번 해준 탓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문득 집혀지는 게 있었다. 그 동기친구가 보낸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말하자면 그 친구를 그림을 보내주는 유일한 소스로만 집착해 생각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 범위를 넓혀보니 다른 한 친구가 있었다.
역시 중. 고등학교 동기인데, 시인으로 활동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가끔씩 자신의 시를 비롯해 이런 저런 글을 보내주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 그림이 포함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내 추측이 맞았다.
그 친구가 작년 3월, 고향 바다를 그리며 자신이 그린 그림 한 점을 보내온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친구와의 메시지를 뒤졌으나 그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 단서는 나의 블로그였다.
친구가 보낸 그 시점을 전후해 내 블로그를 살펴봤더니, 그 내용이 있었다.
내가 쓴 고향 바다에 관한 글과 함께 친구가 보내온 그 그림을 함께 게재한 것이었는데,
동기친구가 보내 온 것이라는 사실까지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었다.

그 그림을 그린 작가가 또 다른 동기친구라는 걸 알게된 것이고 그림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슬슬 풀려져 나가면서 이러면 됐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제 그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이 사안이 매듭지어질 것이었다.
뭔가 마무리되면서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라, 웬 이런 일이라는 어둔 느낌이 나를 감쌌다.

그림을 그린 그 친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작년 8월 세상을 떴다. 그 경위는 잘 모르지만,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죽음이었다.
그림을 보내오면서 그가 쓴 글은 고향 마산의 바다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 답신을 보냈을 것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언젠가 그 친구가 독한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싶다길래,
서울 오면 내가 반드시 보드카를 마시게 해주겠다고 약조를 한 건 기억에 있다.

나는 이 사실도 그 기자에게 알렸다.
그 기자는 데스크와 상의해 내주 나가는 후속기사 끄트머리에 정정의 글을 넣겠다고 했다.
나는 그 그림을 그린 작가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알려주었으면 하는 당부를 했다. 웬지 그 사실을 밝혀주고 싶었던 것인데,
그 이유를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 친구를 추모하는 나름의 한 형식인 것일까.


고등학교 동기 안 머시기 그 친구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한편으로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나는 모르고있었다.
아무튼 어제 그림의 작가를 추적해 그 친구의 것이라는 걸 알게된 후 그 친구의 다른 그림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애를 써가며 찾아본 바로 발견한 그 친구의 그림은 딱 두 점이다.
하나는 그의 시에 덧붙여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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