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서 수성동 골목과 거리를 거닐었다. 어릴 적 남성동에 살면서 바로 곁 경계가 모호한 곳이 바로 수성동이라 많이도 들락거리며 돌아다녔던,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곳이다. 몇 십년 만에 수성동을 걸으니 많이 변했다. 짐작되는 곳은 이미 없어지고 변했다. '시민외과'도 그렇고 '시민캬바레' 등도 그렇다.
옛 시민외과는 그 자리에 오동동 동사무소가 들어서 있었다. 그 맞은 편 좀 위 옛 '이한철치과'는 이름이 변해 '이한치과'로 변해있었다. 원장 이름을 딴 치과인데, 동기인 이한철 군이 이름을 그렇게 바꿨다는 얘기는 들었다.
195, 60년대 마산에 댄스 바람을 일으켜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었던 시민캬바레, 그 자리는 시장에 흡수돼 그 위치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후배인 故 하남근 군의 부모님이 하시던 목욕탕 '수성탕'은 물론 지금은 있을리야 없겠지만, 놀랍게도 옛날 그 자리에 새로운 목욕탕인 '수성탕'이 있는 걸 보고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옛날 여름날 목욕탕 앞을 저녁무렵 지나칠라면 그 앞 평상에서 남근 군 아버님이 친구 분인 구미화 여사 아버님과 난닝구 차림으로 백열등 아래에서 도란도란 정답게 얘기를 나누시곤 하던 그 모습이 떠올려져 한참을 그 앞을 서성거렸다.
수성동은 옛날 일제강점기 때는 고토부키 마찌(壽町)였다. 옛 기록을 보면 수정에 '시일야방성대곡'의 위암 장지연(1864-1921) 선생의 집, 그러니까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우거처'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지금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친일인사로 논란의 대상이 된 선생이지만, 선생이 당시 여기 수정에 거주할 적엔 일제강점에 울분을 토하며 매일 매일을 술을 마시는 통음으로 지샜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정에서 결국 술병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별세한 곳이 예전의 김동조이비인후과 자리였다고 한다.
김동조이비인후과는 내가 마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 유명한 병원이었고 거의 매일을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그 위치를 가늠조차할 수가 없었다.
#수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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