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액자 뒤에 쓰여진 글귀의 날짜로 보아, 1990년 4월 29일 가야산 정상을 앞에 둔 새벽 여명 무렵에 찍은 사진이다. 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본다.
1990년 4월 무렵이면, 다니던 통신사 사장과의 불화로 퇴사를 고민하던 때다. 그 해 6월 신문사로 갔으니, 4월이면 회사에 사직을 통보하고 나가지 않으면서 일종의 사보타주를 하고있을 때인데, 그 무렵 홀로 훌쩍 떠나 가야산으로 올랐던 것이다. 가야산을 왜 갔을까.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아버지가 그리워 올랐을 것이다.
아버지와 가야산을 함께 올랐던 게 1975년이다. 그 때 해인사 인근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에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가야산이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고 가야산이 겹쳐지면서 그냥 밤차를 달려 해인사에 도착해 아버지와 갔던 그 코스로 올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 이태 후 돌아가셨고 가야산은 나에게 아버지와의 추억을 남겼다. 그래서 나는 가야산을 '아버지의 산'으로 부르며 자주 찾아 올랐다.
저 사진을 찍을 때 여명의 어둠 속에서 산새가 유난히 많이 지저귀던 기억이 있다. 촘촘한 산죽의 산길을 아버지가 이끌어주는 것 같았다. 멀리 상왕봉과 칠불봉이 어둠 속에서 그 실루엣을 나타내는 지점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을까.
(오늘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집 정리를 하는데, 저 액자가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나왔다)
깨어나는 山
허허로운 山
홀로우는 山
山, 山, 山
어둔 山 위로
하늘이
열려가고
바람소리
산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山이 운다
山이 운다
(1990. 4. 29/가야산)
'mem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물 구경 (3) | 2020.08.03 |
---|---|
여름의 한 '추억' (0) | 2020.07.28 |
라디오, 그리고 월칭 마틸다(Waltzing Mathilda) (2) | 2020.07.01 |
阿火 '오봉산 호랑이'와 백모님 (0) | 2020.06.29 |
軍시절의 한 여름, 어떤 '도식(盜食)'의 추억 (2) | 2020.06.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