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갑진년 청룡해의 마즈막에 즈음한 날이로구나 생각하니,
어제 능곡시장에서 고등학교 후배들과 함께 한 술자리가,
굳이 그 의미를 부여하자면 ‘작은 망년회’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의 술이라 나는 집을 나설 적에 내심 욕심을 좀 냈다. 술 좀 마시자.
그러다 술끼가 오르면 노래방에 가서 조미미가 부른
’임금님의 첫사랑‘이라도 한 곡 부르자 하는 생각이었다.
능곡시장 안 ’옛날국밥’집. 여기는 몇년 전에 한번 왔다가 술에 고꾸라져 일행에게 업혀나간,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집이라는 걸 들어서서 자리에 앉으며 알았다.
몸조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극적인 모드로 변해갔다고나 해야할까.
막걸리 두어 잔을 비울쯤에 한 후배가 갑자기 일본 소주를 한 팩 꺼냈다.
하쿠다케 25도짜리 소주다. 25도짜리에 이상하게 필이 꽂혔다고나 할까, 한잔을 마셨다.
목구녕을 타고 뭔가 화끈한 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소주 한잔 마시고 그 얼마 후 좀 이상해졌다.
사실 이즈음 역류성식도염이 재발해 가슴통증과 답답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25도짜리 소주 한잔 마시고 나니 갑자기 이상하게도 그 증세가 확 달겨드는 것 같았다.
더불어 몸도 오그라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후배들은 2차 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불편한 몸 폿대 안 내느라 후배들 말을 거들다 노래방 얘기를 했다.
내 말에 2차가 ‘전격적으로‘ 정해졌다. 노래방으로 가자.
밖은 아직 훤한 대낮이다. 노래방 문 연 곳이 없을 것이다.
한 후배가 노래방 간판이 걸려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걸 보고 나는 몸 상태 때문에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혼자서 슬슬 도망 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후배들과 좀 떨어져 앞서 걷고있는 나를 보고 후배가 불렀다.
“행님, 노래방 합니더, 빨리 오이소.”
나는 갑자기 노래방이고 뭐고 다 싫어졌다. 그래서 손을 들어 사래를 쳤다.
“그냥 집에 갈란다. 너그들끼리 가거라.”
후배들은 그래도 막무가내로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고집을 부리며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와 불콰해진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행님, 와그랍니꺼, 인자 후배들도 더 보기싫다 그겁니꺼?”
후배들과의 작은 망년회, 그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이랬다.
그랬으니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탓이라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어원해 후배가 어제 술자리 SNS에 사진을 올렸기로 나도 좀 적어 보았다.



#갑진년망년회
'fu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 - 보리보리그무스, 혹은 보르보뤼제인(borborygmus, borboryzein) (2) | 2025.05.01 |
---|---|
우스꽝스러운 영어 단어 9개 (3) | 2025.04.29 |
아인슈타인의 ‘혀 내민(tongue out)’ 사진 (4) | 2025.01.13 |
중세 독일의 ‘기괴한‘ 부부싸움 해결 방법 (0) | 2024.12.31 |
얘들 장난같았던,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 (3) | 2024.1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