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좀 피해 온 이 책이 오늘도 눈에 들어왔다.
앨 앨버레즈(Al Alvarez)의 <자살의 연구(A Study of Suicide)>.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라는 한 여류 시인의 글을 읽다가,
그의 죽음이 뜻밖에 자살이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찾아보다 만난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자살에 관해 쓰여진 책들 중에 고전에 속한다.
앨버레즈(1929-20190가 이 책을 쓴 건 1971년, 그러니까 플라스 죽은지 2년 만에 펴낸 것이고,
집필의 계기는 플라스의 자살이었다. 그만큼 플라스의 자살은 앨버레즈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앨버레즈는 영국 ‘옵서버’의 시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플라스와 만나게 되었고 이내 플라스의 시적인 재능에 빠져들게 되었다.
플라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앨버레즈는 인간의 자살이라는 영역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플라스를 바탕으로 쓴 이 <자살의 연구>는 그의 대표작이 돼 현재도 많이 읽혀지고 있다.
이 책의 1장이 ‘프롤로그; 실비아 플라스‘로, 플라스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
나는 1장 만 읽고 그 다음은 읽지 않기로 하고 책을 놓았었다. 2개월 전이다.
그런데, 이즈음 가끔씩 도서관에 오면 서가에 꽂혀져 있는 이 책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5월 초에 왔다가 결국 이 책을 다시 펼쳤다. 그러다 이내 닫았다.
2장, 3장으로 전개되는 목차가 왠지 손을 대어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도 목차만 보고 읽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도서관에 와 서가를 둘러보는데 또 다시 이 책이 흡사 “나 좀 봐줘요”하는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쩌지 하는 난감함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나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짐짓 내 할 일을 했다.
점심을 지하식당에서 먹고 산보삼아 여의도 길을 좀 걷고 다시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나는 이 책을 까먹고 있었다. 그러니 서가에 꽂혀있는 이 책이 내 눈에 다시 들어왔을 때 뭐랄까,
처음 대하는듯한 생경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스럼없이 책을 뽑아 펼쳤는지 모르겠다.
펼친 게 플라스를 건너 뛴 2장이었고, 2장은 ‘자살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었고,
나는 바로 읽어 내려갔다.
”… 초기 교회의 가장 불 같은 교부들 중 하나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심지어 예수의 죽음마저 일종의 자살로 간주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적 존재가
육체의 처분에 맡겨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까닭에
예수는 자의에 의해 스스로 죽은 것이라고 지적했고, 오리겐도 이에 동조했다.
이러한 해석은 존 던(John Donne)이 영어로 쓴 최초의 자살옹호론인
<비아타나토스(Biathanatos)>의 바탕을 이룬다.
“우리의 거룩한 구세주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고
아낌없이 피 흘리는 길을 택하셨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차! 싶었다.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미 읽어버렸으니.
내 이럴 줄 알고 이 책을 안 보려했는데…

#자살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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