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화문집회 참가 후 술을 마셨다. 함께 간 친구들과다. 집엘 들어 와 아내랑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 소파에서 술에 취한채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소파에 반드시 누워있었다. 엊저녁 일이 가물가물하다. 술 먹고난 다음 날은 으레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뭔가 뿌엿한 기억이 머리 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분명 뭔가 어떤 일을 한 것 같은 기억이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들어 와서는 뭐 별다른 일 없이 그냥 잤다고 했다. 그럼 자다가 꿈을 꾼 것일 수도 있다. 꿈 속에서 뭔가를 한 것인가. 그럼 그 꿈은 어떤 꿈이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하는데, 어떤 물건 하나가 생각을 휘젖는다. 묵주다. 묵주기도 꿈을 꾼 것일까.
'묵주의 9일 기도'를 두번 째 바치고 있다. 별 다른 할 일 없이 사는 주제에 그게 나름 내 일과의 주요한 사안이다.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의 순서도 노트에 매일 기록하고 있다. 기도에 대한 소회도 곁들이고 있는데, 나로서는 기도의 순서를 잘 지키려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오늘도 아내 출근하고 자리에 앉았다.
묵주를 들고 기도서를 펼쳐 오늘 바칠 기도 부문의 페이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전날 기도를 바치면서 그 다음 날 바칠 기도 부문의 페이지 아래 부분을 살짝 접어놓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노트를 봤다. 노트에 적힌 것도 이상했다. 16일, 그러니까 오늘 바칠 기도 부문이 적혀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 바칠 기도를 이미 한 것으로 적혀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뭔가에 홀린 기분이다. 노트와 기도서로 보자면, 나는 오늘 아침 이전의 어느 시각에 기도를 바친 것인데, 그런 기억이 없다. 어찌된 일일까.
생각이 복잡해지면 늘상 하는 버릇이 하나있다. 뜨거운 물 속에 잠겨보는 것이다. 욕조에 온수를 가득 채우고 물 속에 들어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았는데, 머리 속에 또 묵주가 떠 오른다. 왜 이럴까. 내 묵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가. 조금 전까지도 확인한 내 묵주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 중에 갑자기 어떤 기억이 하나 떠 오른다. 한 밤중에 일어나 묵주기도를 바쳐던 기억이다. 시간도 기억난다. 새벽 1시 경이었을 것이다.
모든 게 풀렸다. 그러니까, 나는 술에 취한 채 소파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 그 무렵에 잠을 깬 것이다. 그러고는 묵주기도를 바친 것이다. 그 시간에 왜 나는 묵주기도를 바쳤을까. 아니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즈음 흘러가는 시간을 매달아주고 싶을 때가 많다. 하루하루가 그렇다. 안타까움이다. 그 안타까운 생각이 새벽 그 시간에 나로 하여금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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