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넋두리하듯 묻는다.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군인은 이렇게 말한다.
"보질 않았느냐. 본 그대로 쓰게."
기자와 군인은 피비린내나는 살륙의 전장에서 만신창이로 살아 남았다.
군인은 승자로, 기자는 비로소 기록자의 입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기자가 군인에게 왜 기사를 어떻게 쓸까고 물었을까.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전장에서의 전률과 감동 때문일 것이다.
비록 숱한 부하를 잃었지만, 인간미 넘치는 리더십, 그리고 몸소 몸을 내던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 군인은 이미 그 기자에겐 영웅 그 자체이다.
그 군인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좀 잘 써 주시게."
본 그대로 쓰라는 것과 좀 잘 써달라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기자가 어떻게 '좀 잘 써달라'는대로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기자의 감정적인 공치사가 보태져 그 군인은 더 큰 영웅으로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피아간에 수천명이 죽은 그 전투도 그에 따라 상당부분 왜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군인은 자신의 공명을 택하지 않았다. 기자에게 덧붙인 말은 더 감동적이다.'
"당신이 보질 않았느냐. 나의 부하들이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본 그대로 써 주시오."
그러면서 울먹이며 하는 말.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내 부하들이 죽었는데 나만 살아 남았다는 것이..."
1965년 미국의 북월남군과의 첫 교전인 아이드랑 전투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기자의 냉철한 눈에 의해 기록으로 남았다.
기자는 '발로 뛰고, 발로 쓰라'는 취재의 금과옥조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자보다 나는 그 군인을 더 크게 본다. 이미 군인으로서 참 군인의 전형이기도 하지만,
역사 앞에서 공명심을 버리고 끝까지 진실을 고수한 참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사람은 후에 아이드랑 전투에 관한 책을 공저로 펴낸다. 제목은 "We Were Soldiers"이다.
이 책은 2002년 영화화됐다. 멜 깁슨이 그 군인으로, 배리 페퍼가 기자로 나온다.
그 군인은 할 무어(Hall Moore) 장군 (당시 중령)이고, 기자는 당시 UPI 종군기자였던 조 갤러웨이(Joe Galloway)다.
갤러웨이는 이 기사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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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드랑 전투 당시의 할 무어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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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종군 당시의 조 갤러웨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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