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배우 신구의 ‘하마터면’ 마지막 무대”
오늘짜 조선일보의 한 칼럼 제목이다. 제목도 그렇고 문화부차장이라는 분이 썼으니 문화칼럼이라 할 수 있겠다.
칼럼 제목에서 그 내용이 이미 짐작은 된다.
원로 연기자인 신구 선생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혼신을 다한 연기를 평가하고 칭송하는 내용일 것인데,
언뜻 '하마터면'이라는 글자가 흥미를 유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칼럼을 읽다가 글의 초반에 잠시 멈칫했다. 신구 선생의 와병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본인 입으로 ‘설암(舌癌)’을 운위하고 있으니 예사 병이 아니다.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맡겨진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목대로 글은 물론 그렇게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반에서 언급된 신구 선생의 와병 가능성에 대한 시사도 공연의 성공과 함께 그냥 우려 정도로 글이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선생의 와병 여부에 대한 언급은 불분명했다. 나는 그게 참 의아스러웠다.
칼럼을 읽는 독자 입장은 저마다 관심의 영역이 다를 수 있다. 원로 연기자의 혼신을 다한 연기도 관심이지만,
문화계의 원로로서 존경받는 그 연기자의 와병 여부가 오히려 더 큰 관심거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노인의 ‘설암’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으니 후자에 더 관심이 많다.
신구 선생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동서남북] 84세 배우 신구의 ‘하마터면’ 마지막 무대
연습 중 혀 마비된 신구 “병원은 공연 끝낸 뒤”
정치·사회가 혼란한 시대, 무대에 목숨 거는 이들 소중
입력 2020.11.03 03:00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2차 대전이 막 시작되던 시기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연기한 배우 신구. /파크컴퍼니
“난 괜찮아. 역시 하길 잘한 것 같아.”
건강은 괜찮으시냐 걱정스레 물었는데, 올해 만 84세인 신구 배우는 ‘허허허’ 웃으며 답했다. 대학로에서 연극 ‘라스트 세션’이 한 달여 진행된 8월 초였다. 무대 위 신구는 83세의 프로이트였다. 그의 낮 공연을 본 뒤 작은 쌀국수 집에 마주 앉았다. 건강부터 물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노배우는 올 초부터 이 연극 대본과 프로이트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사가 입에 붙어 물 흐르듯 흘러야” 만족하는 완벽주의자. 배우의 배역 몰입은 무섭다. 7월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말년에 구강암을 앓은 프로이트처럼 혀에 마비가 왔다. 입안에 염증이 생기고, 말을 하려면 눌리고 아팠다. 평생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설암(舌癌) 같다”는 그의 말에 제작사 대표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병원은 공연 다 끝내고 가겠다고 했지. 죽어도 무대는 포기 못 하니까.” 그가 별일 아니었다는 듯 또 웃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의 무대 위에서 철저한 무신론자 '프로이트'(신구)는 당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이상윤)와 신의 존재, 인간성의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파크컴퍼니
하마터면 마지막이 될 뻔했던 무대. 그런데 개막하자 그 무대가 굳은 혀를 서서히 풀리게 했다. 2차 대전 개전을 앞둔 영국 런던, 무신론자 프로이트가 된 신구는 40년 어린 배우가 연기하는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와 검투사처럼 논쟁을 벌였다. 띄어 앉기로 좌석 절반만 열린 소극장은 코로나에 아랑곳없는 관객들로 연일 매진이었다. “놓치기 싫었거든. 누가 뭐라든 내 연기 인생에 기념비야.”
그날 노배우의 주량대로 폭탄주를 만들어 드렸다. “평생 마셔온 보약”을 그는 기꺼이, 거뜬히 마셨다. 9월 초까지 이 공연을 건강하게 완주했고, 지금은 12월 개막할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를 맹연습 중이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엄격한 무신론자였던 '프로이트'(신구)와 당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이상윤)를 통해 2차 세계대전 개전을 앞두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던 신의 존재와 인간성에 관한 믿음을 놓고 충돌한 두 거인의 가상 논쟁을 그린다. /파크컴퍼니
2일 현재 코로나19 전 세계 감염자는 4600만명, 사망자는 120만명이 넘는다. 어느 한 분야 안 힘든 데가 없다. 우리 연극인들도 코로나에 맨몸으로 맞서 왔다. 사실 ‘연극쟁이’들은 죽음을 껴안고 사는 데 익숙한지도 모른다. 매일 서는 무대에서 슬픔을 딛고 목숨을 거는 게 이들에겐 일상이다.
신구 배우와 나이가 같은 오현경 배우는 2017년 아내 윤소정 배우를 잃은 지 반년여 만에 연극 ‘3월의 눈’을 시작했다. 곧 뜯겨나갈 한옥에 사는 피란민 노부부 이야기. 오현경이 연기한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영혼과 줄곧 한 무대에 선다. 손진책 연출가는 “내가 지금 몹쓸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정작 오현경 배우 본인은 아무 내색 없이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
2015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때는 당시 62세이던 임홍식 배우가 어느 날 공연 뒤 갑자기 숨졌다. 극단 배우와 스태프는 슬픔에 무너지지 않았다. 다른 배우가 밤새 대사를 새로 외워 고인 역할을 맡았다. 고선웅 연출가는 “공연을 계속하는 것이 마지막까지 자기 배역을 완성한 고인을 기리는 길이라 믿었다”고 했다. “연극은 세상 앞에 무력해요. 하지만 좋은 연극 한 편은 괴로워도 살아갈 힘을 주죠. 불안에 발 묶이고 두려움이 우리를 갉아먹을 때, 미약하지만 굴하지 않는 연극의 힘이 세상엔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연극쟁이’들은 그저 스스로도 주체 못 하는 사랑과 자부심을 무대에 쏟는다. 그것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진심은 때로 깊은 슬픔과 죽음의 공포도 이겨낸다. 관료는 자부심을 잃고, 법복 입은 이들은 사명감과 결기를 잃고 정치에 갈팡질팡하는 시대. 무대에 목숨을 거는 ‘연극쟁이’들이 새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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