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가. 음악을 듣는 것도 점점 아날로그화 돼 간다. 음질이 칼칼하고 매끈한 것 보다 좀 묵직하면서도 스크래치가 좀 낀 게 좋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멜랑꼬릴리(이런 단어가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하여튼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하게 들려지는 게 좋다. 간단히 말해서 CD로 듣는 게 이젠 좀 질렸다는 얘기다.
CD가 아니면 뭐가 있을까. 레코드 판, 릴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가 있을 것이다. 물론 LP 판도 꽤 있다. 하지만 턴 테이블이 고장났다. 앰프가 그래도 마란쯔이고 스피커도 옴(Ohm)이라 꽤 들을만 했는데, 그만 턴테이블 파워 셀렉션을 잘못해서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다. 턴 테이블이 멀쩡하다해도 LP를 그리 자주 듣지는 못할 것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판 하나 끝나면 바꿔 끼는 것도 귀찮을 정도이니 이것 저것 연결하고 조절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릴 테이프도 좋은데 그 건 없다. 카세트 테이프는 많다. 1970년대부터였으니까 한 두어 부대 쯤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마땅찮았다. 옛 구닥다리 가 하나 있는데 기계가 오래 됐는지 테이프가 늘어진다.
얼마 전 라디오를 겸한 카세트 플레이어가 하나 손에 들어왔다. 우체국에서 찾아 허리가 안 좋은 상태에서 들고 집으로 오느라 혼 좀 났다. 체코의 한 여인에게서 산 것이다. 쿠츠네초바 마리나라는 여인인데, 이베이(eBay) 셀러다. 우연히 서핑을 하다 맘에 드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눈에 띄어 낙찰받은 것인데, 텔레풍켄(Telefunken) 플레이어다. 더 구체적으로는 '마그네토폰 파티 사운드(Magnetophon Party Sound) R201'이다. 라디오(FM, AM)와 카세트 플레이어 겸용.
나는 예전부터 텔레풍켄을 선호했다. 그룬디히(Grundigh)와 쌍벽을 이루는 독일의 오디어 메이커인데,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업체다. 텔레풍켄에서 나온 명기들은 허다할 정도로 많다. 특히 1940년대에 나온 진공관식 라디오는 명불허전의 것이 많다. 명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허접스런 것은 몇 개를 가지고 들어본 적이 있다.
집에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깨끗하다. 1970년대 제품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뿐 새 것 같다. 조심스럽게 전원을 연결해 틀어본다. 우선 라디오. KBS 1FM을 틀었다. 안테나를 안 올렸어도 채널 방황 없이 잘 잡힌다. 음질은 모노(mono)지만, 역시 기대했던대로 좋다. 스테레오는 원래 기대하지 않았었다. 아날로그식 멜랑꼬릴리한 음향은 역시 모노가 좋기 때문이다. 다음은 카세트 플레이어. 예전에 좋아했던 이시가와 사유리 것을 틀어 보았다. 테이프 늘어짐이 없이 잘 돌아간다. 음질은 예전에 듣던 그대로다. 플레이어는 간단하다. 라디오/카세트 옵션 스위치에 볼륨과 음향 조절 스위치 뿐이다.
예전에 즐겨듣던 카세트 테이프를 창고에 들어있는 부대를 뒤져 우선 몇개 끄집어 냈다. 사이먼 앤 가펑클, 보니 엠, 크리스 크리스토프슨, 그리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Night in Seatle)'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우리 대중가요가 빠질 수 없다. 나훈아 2집(1982년).
점심도 거르면서 하나 하나씩 틀어 듣다보니 옛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옛 시절의 기분이지만 묘한 것은 그런 가운데서도 뭔가 모르지만 몽글몽글 새로운 기대감 같은 게 생겨지는 것 같다. 좀 상투적인 말로 희망이라해도 괜찮겠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 가을의 한 동안 이 카세트 플레이어와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체코의 그 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더니 금방 답신이 왔다. 인사라는 것은 이베이식으로 하자면 파지티브(positive feedback)을 주는 것이다. 그 여자의 인사도 그에 대한 것이다. "Thank you for your positive feedback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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