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넷플릭스를 통해 다큐멘터리 '사카라 무덤의 비밀(Secrets of the Saqqara Tomb)을 재미있게 봤다. 나를 1980년대 후반 이집톨로지(Egyptology)에 빠져있던 그 시절로 잠시나마 되돌아가게 했다. 한 마디로 푹 빠져서 봤다는 얘기다.
내가 그때 고대 이집트에 빠져들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다. 파라오 세티 1세의 영혼이 빙의된 영국여자 도로시 이디(Dorothy Eady, 1904-1981)에 관한 책(The Search for Ohm Seti)을 우연히 읽고 그렇게 됐다. 그리 길지 않았고 잠시 그랬다. 여러 번잡한 일들이 생기면서 자의든 타의든 자연스레 빠져 나왔는데, 나는 그것을 지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책이 도로시 이디라면, 오늘 본 이 다큐멘터리는 와흐티에(Wahtye)다. 고대 이집트 유물 발굴에서 정확한 이름과 직업을 달고 4500년만에 그 실물과 정체를 드러낸 것은 와흐티에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사카라 아흐티에 무덤 발굴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거대석상이나 채색화, 미이라, 상형문자, 그리고 오시리스, 이시스 신의 이름 등은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그러니 새삼 반가웠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이집트 고대무덤 발굴 기록물과는 좀 다르다. 4500년 전 이집트 고대왕조의 사제였던 와흐메티의 슬픈 가족사를 엿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체증적으로 보여주고 들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된 와흐티에의 무덤은 그 외양이 거대하고 호화스러웠다. 무덤 입구 등에 세워진 와흐티에의 석상만 자그마치 55개에 이르고 그 외에 와흐티에를 그린 채색화 등은 그 색깔이 지금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막상 무덤 내부를 발굴한 결과는 외양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와흐티에 묘소의 상형문자는 와흐티에에게는 모친과 아내, 그리고 3남1녀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묘소 바닥 세 곳의 갱도를 파 헤치던 중 한 군데서 세 명의 여자의 유골이 나왔다. 와흐티에의 모친과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린 딸의 유골들이다. 여자 세 명이 함께 묻혔다면, 와흐티에의 세 아들은 어디에 묻혔을까.
마지막 한 군데 갱도에서 무덤의 주인공 와흐티에가 유골의 모습으로 나왔다. 초라한 목관에다 미이라의 모습도 아니었다. 묘소의 화려한 외양과는 완전 다르게 검소하게 묻혀져 있는 모습이었다. 유골 감식 결과 와흐티에는 허약한 몸으로 병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식의는 그게 말라리아 감염사로 추정했다.
와흐티에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후 초라하게 묻힌 것을 토대로, 이 댜큐멘터리는 모친과 아내, 그리고 딸이 함께 묻혀있는 이유를 추정하고 있다. 와흐티에가 살았던 그 당시 이집트에 말라리아 역병이 만연했고, 그와 그 가족들이 차례로 죽어갔던 것이다. 와흐티에는 모친, 아내, 딸을 먼저 묻고 자신이 맨 마지막으로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세 아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미뤄졌다. 2019년 라마단과 이집트 정부 발굴예산 부족으로 발굴작업이 멈췄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굴이 재개되면 아들들이 나올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한참 보고있는 중에 아내가 장을 보고 돌아왔다. 아내가 현관을 들어서며 뭐라 뭐라 하는데 귀가 기울여지지 않았다. 아내더러 약국에 들러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의 비강스프레이 약을 사오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거 사왔다고 얘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도 잊고 그저 다큐멘터리에 빠져 있었다.
4500년 전 말라리아가 창궐하던 그 시절의 와흐티에 집에서도 나와 내 아내와의 이런 비슷한 시추에이션이 없었을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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