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종 바이러스'와 '델타 항공,' 그리고 '구사일생(narrowly escape from the jaws of the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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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종 바이러스'와 '델타 항공,' 그리고 '구사일생(narrowly escape from the jaws of the death)'

by stingo 2021. 7. 19.

팬데믹 코로나의 와중에 '델타 변이바이러스(Delta-Variant)'로 온 세계가 난리다.

이런 가운데 골탕을 먹고있는 글로벌 기업이 주목을 끌고있는데,

바로 세계 최대 항공사인 미국의 '델타항공(Delta Airlines)'이다.

그 많은 이름 중에 하필 '델타'라는 같은 이름을 달고있으니, 기업이미지 훼손으로 곤욕을 치르고있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외신을 보면서 문득 나와 델타항공 간에 얽힌 얘기가 떠 올랐다.

공포와 골탕이라는 측면에서 '델타 변이바이러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고.

26년 전의 얘기인데, 하여튼 '델타'라는 이름이 여러가지로 그렇게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https://www.wsj.com/articles/delta-variant-the-airline-prefers-plain-old-b-1-617-2-11626350400

 

Delta Air Lines, Meet the Delta Variant

Airlines are coming off a difficult year, but only Delta is in the unfortunate position of sharing a name with a highly transmissible Covid-19 variant that has become the dominant strain in the U.S.

www.wsj.com

 

1995년 10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취재를 끝내고 미국 뉴욕으로 오는 길이었다.

어떤 돌발적인 상황으로 10명 정도의 동료기자들과 공항에서 급히 델타항공 티켓을 구매했다.

그날 오타와에는 많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기상상태가 좋지않았다.

당연히 항공기 운항과 사고에 대한 걱정들이 앞섰다.

델타항공이라면 세계 최고최대의 항공사이고 안전성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평가가 높으니

설마 뭐 별일 있을까고 서로들 암묵적인 자위로 불안스런 마음을 달랬다.

 

출발시간이 돼 비행기 계류장으로 가는데, 우리가 탈 비행기를 보고 설마했다.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 아닌가. 그 후에 알게된 것이지만, 미국과 캐나다 간은 국내여행으로 간주돼,

항공기가 제트가 아닌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로 운행되고 있었다.

어찌됐든 비행기는 타야했고, 탑승을 위해 조그만 트랩을 오르려는데,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날개 한 쪽의 어느 부분이 누더기처럼 기워져있는 것이다.

볼성 사납게 흡사 헝겁에 실로 기운 것 같았는데,

그게 엔진진동으로 너덜거리고 있는 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게 보였다.

비행기 내부는 더 했다. 20인승인데,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일행 중 하나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투덜댔다.

화장실의 전구도 고장난 상태였고, 물도 잘 내려가질 않는다는 것.

우리 일행은 뒤쪽에 차례로 앉았는데, 모두들 불안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우리 외 다른 승객들은 어찌 된 셈인지 모두 흑인이었고, 스튜어데스도 나이 든 흑인여자였는데,

우리들이 동양인이라 그런지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짧은 영어로 몇 가지 물어봐도 힐끗 쳐다만 볼 뿐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얼마 후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이륙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올리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조종석 문이 덜커덩하고 열리면서 조종석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는데,

비스듬히 기운 각도에서 보이는 조종실과 조종사들의 모습이 무슨 영화장면 같았다.

조종석 문이 와당탕 열리고 그 내부가 훤히 보여지고 스튜어데스가 화급히 뛰어가 문을 닫으며

우왕좌왕하고 그러니 우리들 심경이 어떡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비행기를 회항시켜 내리고 싶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스러운 것이었다.

털털털 소리를 내며 나르는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거리는 것이다. 그러더니 아래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몸이 내리 꽂혀지듯 기운 상태로 좌석 손잡이에 온 몸의 무게를 맡긴 채 비명을 쏟아내고 있었다.

기상상태 악화로 난기류(turbulence)를 만난 것이다.

급전직하하던 비행기가 또 솟구치더니 춤을 추듯 동체가 흔들리고...

비행기 내부는 개인 소화물이 풀려진 채 날라다니고 승객들은 곤두박질 쳐지고...

그런 상태가 한동안을 반복하면서 우리들은 구토와 함께 거의 초죽음 상태가 돼가고 있었다.

내 곁의 한 후배기자는 해병대출신으로 덩치가 산더미만했다.

그런 와중에그 후배가 언뜻 눈에 들어온 것은 그 후배의 중얼거림 때문이다.

후배는 아수라장의 그 상태에서 솥뚜껑만한 두 손을 꼭모아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후배의 그 모습에 실소가 나온 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 무렵 일본에서 대규모 비행기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로 회생된 승객의 행태가 사고 후 화제에 올랐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썼고,

사고현장 수습과정에서 그 메시지가 발견된 것이었다. 나는 그 생각이 퍼뜩 났고,

호주머니에서 급히 취재수첩을 꺼내 두꺼운 취재수첩 표지 앞뒤로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썼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든 이 메시지는 내 가족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시라큐스 도시 전경

 

튜블런스로 인한 비행 혼란상태는 간헐적으로 일어났고,

그 때마다 우리들은 좌석 손잡이에 의지한 채로 몸을 그냥 맡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타와에서 뉴욕 간 비행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로 짧다. 그 중간에 한번 기착을 한다.

우리들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착지인 시라큐스(Syracuse)에서 모두 내리자고 했다.

그 얼마 후 시라큐스에 기착을 했다. 우리들은 안도했고, 모두들 짐을 챙겨 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스튜워데스에게 따로 말 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들은 다만 살아 남았다는 것,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심경들이었기에 기착지에 내리는 별도의 절차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비행기가 시라큐스에 도착했고, 흑인 승객들 중 몇몇이 내렸다.

우리들도 그들을 따라 내리려는데, 스튜워데스가 그 때 우리 앞을 가로 막으며 물었다.

 

뉴욕까지 가는 게 아닌가?

맞다. 뉴욕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두번 다시 이런 비행기는 타지 않을 것이다.

 

대략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스튜워데스가 잠시 기다리라며 조종사 실로 갔다.

조금 후 와서 하는 말이 이랬다.

이제 튜블런스는 없을 것이다. 지금 시라큐스는 폭우가 내리고 있다. 거기서 뉴욕을 가려면 하루를 묵어야 한다.

폭우 속에 어디서 묵을 데가 시라큐스에 있는가? 그렇게 물으니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우리들은 우리들이 겪었던 죽을 뻔한 그 위기의 순간을 애써 얘기하며 내리려 하는데, 스튜워데스는 딴 판이다.

뭘 그 정도를 갖고 호들갑을 떠는가 하는 그런 투다.

아마도 오타와에서 뉴욕을 운항하는 승무원들은 튜블런스에 익숙해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난감했다.

우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시라큐스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우려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냥 타고 뉴욕까지 가기로 했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고, 튜블런스에 어느 정도 감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기 보다는 차라리 자포자기한 측면도 없잖아 있었다. 까짓것 될 데로 대라는 것.

 

뉴욕 허드슨강과 '자유의 여신상'

 

비행기가 시라큐스에서 다시 떠 올라 뉴욕으로 오면서 튜블런스가 없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난기류는 계속됐고, 우리들은 그 상황에서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곤두박질 쳐지는 혼돈 속에서 한 후배가 비행기 창문 아래를 보며 외치듯 물었다.

선배, 뉴욕이면 허드슨 강과 '자유의 여신상'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왜 나타나질 않는 겁니까?

우리들이 구름 아래 자유의 여신상을 본 것은 후배가 그 말을 한 그 얼마 후다.

구름아래 허드슨 강의 그 자유의 여신상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고 뉴욕에 금방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비행기는 뉴욕상공을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맴돌다 겨우 라과디아 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다.

그 무렵이 유엔창설 50주년이라 유엔가입 각국 정상들이 속속 뉴욕으로 오는 바람에

델타항공의 그 보잘 것 없는 프로펠러 비행기의 뉴욕착륙 순서는 밀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이 아니라 라과디아 공항에 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1995년 10월, 유엔창설 50주년을 맞아 뉴욕 유엔본부에 모인 세계각국 정상들 ​

 

잘 하지 못하는 영어지만 그 때 이후로 평생 까먹어지지 않는 영어 관용구가 하나 있다.

narrowly escape from the jaws of the death…

라과디아 공항 착륙장에서 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내 곁에 델타항공 그 프로펠러 비행기 조종사들이 앉았다.

그들끼리 상기된 표정으로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기장으로 보이는 조종사가 하는 말 중에 이 표현이 있었고,

그게 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리 만큼 크게 들렸다.

'구사일생'이라는 말인데, 말하자면 뉴욕으로 오는 비행과정에서 겪은 튜블런스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기장이 그런 말을 할 정도였으면, 그 튜블런스가 어느 정도였을까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그 뚱뚱하고 늙은 흑인 스튜워데스는 어쩌면 그렇게도 무감각하고 빡셌는지가 지금 돌이켜보면 사뭇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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