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건평 港의 천상병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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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건평 港의 천상병 詩人

by stingo 2022. 1. 30.

천생(天生) 시인으로 회자되는 천상병은 주지하다시피 마산 사람이다.
그런데도 생전에 고향 마산에 관해 그리움이나 향수의 대상으로 특별히 언급한 적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그렇다.
마산중학에 다닐 적, 김 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을 당시의 시들에는 마산을 담은 듯한 느낌의 글들이 더러 있다. 그의 문단 추천작인 ‘갈매기’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후 마산을 떠나서는 고향을 딱히 그리워 한다든가 애찬하는 글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원래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동가숙 서가사(東家宿 西家食)하는 처지에서는
머물러 있는 곳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니, 그런 관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혹여 마산이 시인에게 무슨 일을 계기로 어떤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없잖아 있다.
이를테면 동백림간첩단 사건으로 취조를 받을 당시, 담당자가 고향학교 후배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심신이 피폐한 상태에서 마산사람과 마산을 좀 멀리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마산사람 입장에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천 시인의 생전 행적을 더듬어 보면 마산보다는 타 지역에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도
마산사람 입장에서는 좀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시비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보면 마산보다는 다른 지역에 더 많다.
저 멀리 지리산 중산리 법계사 초입에도 있고, 서울에도 수락산 아래 노원동을 포함해 여러 곳에 있다.
천 시인을 기리는 예술제도 마산이 아니라 의정부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고 기념관도 서울 관철동에 있다.





이번에 우연히 어떤 글을 보다 천 시인의 흔적이 강화도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더 찾아 봤더니, 강화도의 천 시인에 대한 흔적과 기림은 다른 여타 지역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울림이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시비는 물론이고 동상도 있을뿐더러, 그 공간은 천 시인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름하여 '천상병 귀천 공원'이다.
이 천 시인 공원이 조성된 곳은 강화도 건평 港이다. 정확하게는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인데,
지자체 차원에서 천 시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라고 한다.





건평 港에 천 시인을 위한 이런 공원이 들어선 것은, 천 시인과 건평 港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시인의 대표 시인 '귀천(歸天)'을 쓴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공원 이름에 천 시인과 함께 ‘귀천’이 들어간다.
1960년대 중반, 시인은 친구인 박재삼 시인과 자주 이곳을 찾았다.
그의 어느 글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향 바다를 가고픈데 여비가 없어 대신 서울서 가까운 강화도 바닷가를 찾았다"는 것.
이 글대로라면, 시인은 그 무렵에는 고향 마산을 그리워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아무튼 시인은 박 시인과 건평을 자주 찾아 건평나루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그런 과정에서 쓴 시가 '귀천'이었고, 시인은 이 시를 친구인 박 시인에게 건넨다.





그 직후 시인은 동백림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6개월 간 모진 고문 끝에 폐인 상태에 이르면서 행려병자로 살아가다 행방불명이 된다.
그 후 기적적으로 청량리정신병원에서 발견된 후 친구 누이동생인 목순옥과 결혼을 하고는
수락산과 인사동 시대를 소풍 나온 것처럼 살다 1993년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시인과 관계된 사람들도 대부분 이 세상에 없다. 박 시인도 목순옥 여사도 다들 세상을 떴다.
서울에서의 천 시인에 대한 흔적은 인사동이다. 아직도 그곳에는 목 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이 학고재 골목 안에 있다.
그 찻집에 어쩌다 한번 씩 간다. 사진을 보기 위해서다. 마산중학 다닐 적에 찍었던 흑백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 천 시인이 또래의 학우들과 앉았는데, 다들 고만고만한 얼굴들이라 갈 적마다 누가 천 시인인지 까 먹는다.
목 여사 생전에 몇 번 묻곤 하다가, 귀찮아 하길래 아예 사진에 표시라도 하시지 했다가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건평 港 공원에서 천 시인은 막걸리 가득 담겨진 잔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참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생전에 제일 좋아했던 생명수 같았던 막걸리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만한 행복한 표정이 어디 있겠는가.
그 뒤, 돌에 새겨진 '귀천'이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그 시와 딱 들어맞는 시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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