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호기심, 혹은 食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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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taste

먹거리 호기심, 혹은 食貪

by stingo 2022. 4. 18.

텔레비전에서 음식 관련 프로, 시쳇말로 '먹방'을 즐겨보는 편이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텔레비전은 무료할 때 본다. 그러나 그다지 눈에 담가 보는 것은 아니다. 방송을 보면서도 무료하다는 얘기다.

'먹방'에 눈길이 가는 건, 무료한 가운데 남들 맛 있게 배 불리 먹는 게

보기에 뭔가 풍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는 연속극을 잘 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아예 눈길도 안 주고, 어쩌다 이른바 '먹방'이 나오면 한번씩 본다.

방송에 나오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식탐이 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에는 좀 달라졌다. 입맛을 다시면서 보기도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먹거리들이 식탐을 자극하면서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이 곧잘 드는 것이다.

예컨대 그저께 모 방송에는 마요네즈에 관한 게 있었는데,

평소 갖고있던 나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 좀 관심을 갖고 보았다.

말하자면 마요네즈라는 것은 몸에 그다지 좋지않는 것이라 안 먹는 게 좋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그 걸 잘 활용하면 '기상천외'의 맛을 내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방송에는 나물무침에 마요네즈를 가미하는 것이었는데,

평소 나물을 좋아하는데다 가만 보니 재료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에 새겨 놓았다.

그밖에 그 방송에는 새우가루에 대한 것도 있어 그 또한 메모를 해 놓았다.


어제 일요일 오후 무료한 시간에 생각이 났다. 동네 마트에 가서 마요네즈를 샀다.

방송에 나오는 그 나물이 없길래 오이고추를 샀다.

오이고추가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웅큼 씩 포장해 놓은 그 게 싱싱하고 풍성해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재료들, 예컨대 된장, 고추가루, 참깨, 참기름, 쪽파 등을 챙겼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요즘 잘 나가는 백 머시기의 레시피가 있었는데, 설탕을 운위하고 있었다.

달콤함을 더하면 더 맛 있다는 것이다. 설탕은 그렇고해서 올리도당을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에서 가르쳐준대로 했다.

오이고추를 썰어 볼에다 담고 거기에 된장 한 스푼과 고추가루 등 준비된 재로들을 넣고 버무린다.

마지막 마무리가 마요네즈다. 그리고 올리고당 조금. 막상 나와 있는대로 했지만,

모든 게 그렇듯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된장을 너무 많이 넣은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 좀 뻑뻑하게 보인다.

마요네즈는 그 맛이 없는 듯 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준다고 했다.

된장과 양념이 많은 것 같아 오이고추를 조금 더 썰어 넣었다.

백 머시기 그 분은 뻑뻑해 보이면 물 한 두어 스푼 넣으라고 했는데, 그렇게하지는 않았다.


만들어 그릇에 담가놓고 보니 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인다. 맛을 보자. 기대에 좀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는 순간적인 다짐과 함께 한 입 먹어 보았다.

괜찮았다. 맛 있었다는 게 아니라 뭔가 좀 묘한 맛이 났다. 마요네즈 탓인가.

뜨거운 밥이 있었다. 그 밥에 잘 구운 김, 그리고 시레기 국으로 한참 늦은 점심을 그 오이고추 무침과 함께 먹었다.

맛 있고 풍성했다. 밥 한 공기가 좀 모자라 더 먹었다.


며칠 전에 사 놓은 방울양배추가 있다. 아내는 그것으로 장아찌를 담그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전전긍긍해 한다. 실패하면 어떻겠냐는 것.

방울양배추는 그냥 생으로 된장에 찍어 먹어도 식감과 맛이 괜찮았다. 있는 방울양배추를 반반으로 나눴다.

반만 장아찌를 담그자. 아내는 간장을 다리는 등 부산을 떤다.

아내는 또 오이김치를 담그겠다면서 준비를 한다. 저녁 주방이 부산해졌다.

아내의 바쁜 모습을 나는 거실에 앉아서 본다.

늦은 점심으로 먹은 오이고추 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있다. 저녁 때도 맛있게 먹어야지.

오늘 어떤 책에서 읽은 먹거리에 관한 시 한 편.
외로워서 밥을 먹는다는 구절이 뇌리에 여운을 남긴다.
밥으로 채워지는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텅 빈, 혹은 꽉 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천양희 /밥]

 

 

 

- 마요네즈 오이고추 무침(퍼온 사진입니다) -

 

 

 

A Poor Diet; 1936 - December 1936: "Christmas dinner in home of Earl Pauley near Smithfield, Iowa. Dinner consisted of potatoes, cabbage and pie." Photograph by Russell Lee for 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photo from www.shorp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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