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약속장소인 광화문 ‘포도나무’에 10분 정도 이르게 도착해보니,
한 후배가 먼저 와 혼자 소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우선 소맥 한 잔부터 안긴다.
다른 후배 둘이 도착할 때까지 둘은 그렇게 몇 잔을 마셨다.
그러니 나는 술발을 돋우게 하는 ‘발동’이 좀 일찍 걸린 셈이다.
일주일 만에 마신다는 나름의 익스큐스가 있어서 그런지 술맛이 났다.
소주는 ‘화요’인데, 40 몇도짜리가 아니고 26도 짜리다.
하지만 선입견이라는 게 있다. ‘화요’는 독한 소주라는.
그걸 맥주에 말아 두 병쯤 비웠을 때 주기가 동하는 게 느껴졌다.
후배들과 잔을 맞대며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사무실 들어가는 후배도 있고해서 오후 2시가 좀 넘어 일어섰을 때,
나는 좀 취해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후배들과 헤어지고는 전철을 타기위해 지하철 역으로 들어섰다가,
거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깨는데 약도 없다는 낮술인 '설주(晝酒)'에 취한 것이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했는데,
엉뚱하게도 내 발걸음은 사직공원 가는 출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출구를 나오면 누하동 가는 길로 이어진다.
발걸음이 그랬다는 건 결국 더 마시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누하동의 그 집은 아직 문을 열고있지 않았다.
주인장 전화번호가 있으니 전화를 했다.
주인장이 나올 때까지 나는 누하동 거리를 걸었다.
주인장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그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없다.
오늘 아침에 보니 왼쪽 다리 무르팍이 아파 봤더니 생채기가 났다.
어디에 부닥쳤든가 아니면 엎어져 생긴 상처인데 그 기억조차 없다.
아내가 출근을 하면서 앞으로 그 카드로 결제하지 말아요 한다.
나는 아내의 신용카드 두 장을 넣고 다닌다.
무슨 카드? 했더니 기억이 나질 않느냐고 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아내 말인즉슨 내가 아내 H카드로 몇 만원을 썼다는 것인데,
그 또한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광화문 낮술이 나를 블랙아웃으로 몰아간 것이다.
오늘 하루, 술로 상한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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