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치과병원 예약없이 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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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치과병원 예약없이 간 날

by stingo 2023. 6. 2.


병원 진료를 예약하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그런 상식을 어길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오늘 아침 내 경우가 그랬다.
오늘 새벽 잠자리에서 치아에 비상상황이 생겼다. 아래 오른 쪽 송곳니 씌운 부분이 깨져 빠진 것이다.
보름 전 동네 치과병원에서 해 넣은 것이다. 통증은 없으니 급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빠진 부분이 휭-하니 그 쪽 치아에 불안한 낌새가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치과에 가기로 아침부터 서둘렀다. 진료 시작은 아침 9시 반이다.

15분 일즉 치과엘 도착해 접수를 하려는데, 받아주질 않는다. 예약이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사정 얘기를 했다. 갑작스레 발생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문제 치아의 상황에 더해 불과 보름 전 씌운 게
깨져 떨어져 나갔으니 병원 쪽 책임도 있는 것이라는 점도 은근히 부각시켰다.
하지만 병원 접수구 여직원은 단호했다. 예약한 분 진료 사이사이에 시간이 나면 어떻게 끼워넣을 수 있지만,
금요일 아침은 예약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 또한 어렵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원장이 출근해 접수구 앞을 지나고 있었기에 목례를 했다.

9시 반이 되니까 예약환자가 이미 세명을 넘어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한 진료가 나보란 듯이 먼저시작됐다.
나는 그런 상태에서 15분 이상을 기다리다가 다시 한번 사정얘기를 했다.
예약 안 한 건 내 불찰이지만, 이건 말하자면 일종의 ’응급‘ 상황이 아니냐고
사정을 얘기하면서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되냐고 물었다.
접수구 여직원은 내 사정에도 아랑곳 없이 그저 기다리라고 만 했다.

내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있었고, 진료실 안에서는 그게 듣기가 불편한지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그냥 가버릴까 어쩔까로 망설이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9시 45분이었다.
진료대에 누웠더니 여자원장이 와 한 마디 한다. 병원 사정이 금요일은 예약 환자가 많아 아침부터 바쁘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진료대 위에 있으면 순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원장 말에 순순이 수긍하면서 예약 안 한 나의 불찰이라고 했고 앞으로는 반드시 예약을 하겠다고 해다.

진료와 치료는 10분 만에 끝났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원장에게 내 치아상태와 관련해 부가적인 질문을 하렸더니,
대답이 아주 사무적이고 건성적이다. “예약한 다음 진료를 받으세요.”




그나저나 오늘 아침 나는 졸지에 병원 예약도 모르는 천덕꾸러기 늙은이가 됐던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 벌레를 방불케 하는… 나는 천방지축의 천덕꾸러기 늙은이가 됨으로써
비로소 카프카와 소설 속 그레고르의 심경에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었다.
카프카와 관련된 신조어로 '카프카세크(Kafkaseque)'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적,’ 그러니까 부조리하고 음울하다는 의미다.
오늘 내가 천덕꾸러기 늙은이로 변신하면서 자꾸 이 단어가 입에 우물거려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의미 또한 더욱 나에게 명료하게 다가왔다.






#동네치과병원#예약#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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