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분은 저 자리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공원을 몇 바퀴 돌면서 그리고 공원을 빠져나갈 때까지도 아무런 표정없이 그저 저 자리에 있었다.
아마도 내가 공원을 떠난 후에도 계속 저렇게 한 없이 앉아 계셨을 것이다.

가만 보니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흰 비둘기 한 마리와 함께였다.
비둘기는 할아버지 앞을 맴돌면서 뒤뚱거리기도 하고, 재롱도 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면서 할아버지와 시간을 함께 하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둘기 하는 짓이 앙증맞아 좀 더 다가가 보니 그냥 그러고있는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가끔씩 던져주는 먹이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럴 때 보면 할아버지는 그냥 표정이 없을 뿐 노련한 조련사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무표정하게, 하릴없이 보이는 할아버지와
그 앞에서 재롱을 떨고있는 비둘기의 모습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할아버지 앞에 모여들었고, 비둘기는 그걸 즐기기도 하려는 것처럼 동선이 과감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게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대조되는 게 사람들 눈에 좀 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좀 멀찌기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망원으로 담으려했을 때 할아버지는 짐짓 잠시 포즈를 취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역시 세상사에 무감한 듯한 표정이 없는 모습으로.

(사진은 미국의 앨버트 박 페친 분이 보내준 Vintage Sony Cyper-Shot DSC-F717로 찍었다)
#화정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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