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때때로 흉흉하고 허전할 적에는 옛글에 기대는 습성이 있다.
옛글을 읽고 한마장 필사하고 나면 마음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다. 그 이유를 모르니 나는 그저 습성이라 말하는 것이다.
근자에 이 책의 글을 보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글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사는 年數 백년도 못되는데, 항상 천년의 시름을 품고 있으니..."
이런 옛글의 집합서, 그에 더해 나름 보고로 여기고 있는 책은 <古文眞寶>다.
지금도 있을 것이지만, ‘을유문화사’라는 출판사가 1960년대 후반에 펴낸 <고문진보>를 나는 여태껏 보고 있다.
1970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처음 접한 게 崔仁旭 선생이 譯한 이 책인데,
그 무렵 ‘을유문화사’에서 ‘세계사상교양전집’ 중의 한 권으로 간행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나는 반세기 이상 보아온 것이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책도 많이 낡았다.
겉표지도 그렇고, 속지도 삭아 부스러지는 걸 간신히 이래 저래 땜빵식으로 해서 갖고 있는데,
그러니 한번 씩 볼 때마다 부스러지고 사그라질까봐 여간 신경이 쓰여지는 게 아니다.
조심 조심 본다는 얘기다.
어제 문득 어떤 글귀가 떠올라 이 책에서 그걸 확인하려 펴다가 책을 바닥에 떨어뜨려 크게 낙담했으나 다행히 큰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을유문화사‘ 최인욱 선생 역의 <고문진보>와 함께 또 한 권의 <고문진보>가 내 책장에 있다는 걸 어제 알았다.
또 한 권의 <고문진보>가 내 책장에 있을 줄 꿈에도 몰랐으니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책 사이즈도 크고 장정 또한 깨끗하고 좋은 <고문진보>인데,
‘전통문화연구회’에서 成百曉 선생 역주로 간행된 책이다.
표지에 성백효 선생 이름과 ’전통문화연구회‘가 적혀있는 걸 보고 나는 반가움과 함께 무릎을 쳤다.
이 책이 내 수중에 있는 연유를 알게됐기 때문이다. 나는 2012년부터 몇년 간 ’교수신문‘에서 편집위원으로 있었다.
그 때 격월 특집으로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기획시리즈 물을 만들고 있었는데,
2013년 11월 어느 날 고전 번역을 하고있는 ‘전통문화연구회’의 李啓晃 회장님에 관해 글을 쓰면서 그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이계황 선생이 아마 나에게 거기서 펴낸 <고문진보>를 비롯해 몇 권을 책을 줬던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이계황 선생을 비롯해 宋載邵, 성백효 선생 등 漢學의 대가들을 알게됐던 것이다.
마치 새 책같은 이 <고문진보>를 펼치면서 이계황, 성백효 선생 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때 책을 선물 받았으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나따나 책을 열심히 봤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이다.
아울러 그동안 인사 한번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도 들면서 한편으로 늦게나마 새로운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것 같은 이 <고문진보>와 이런 별스런 인연을 맺게 해준데 대한 고마운 마음도 든다.
#고문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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