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이즈음 소피(Sophie)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아직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답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입니다.
영화와 책을 접한 이후 삼십 수 년이 흘렀습니다만, 아직 그렇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인한 갈등 속에 소피는 항상 그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소피, 그녀는 또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그림자를 연상케 하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소피 짜비스토우스키(Sophie Zawistowski).
월리엄 스타이런 (William Styron; 2006년 타계)이 쓴,
‘소피의 선택 (Sophie's Choice) 이라는 소설 속의 여인입니다.
나보다 한 세대 건너에 있는 폴란드 여인.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치에 의한 처절한 홀로코스트를 온 몸으로 겪었던 유태인 아닌 유태인.
“나로 하여금 선택케 하지 말아 주세요! (Don't make me choose, please!)"
灰暗빛 어둠 속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길게 늘어선 유태인 행렬 앞에서 소피는 소리칩니다.
이 단말마적인 말은, 그러나 그녀로 하여금 끝내 하나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나락으로 내몹니다.
그리하여 아들과 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러나 소피는 사랑하는 자식들 둘 다를 잃습니다.
그리고 뉴욕.
餓死직전 진주한 연합군에 의해 살려진 소피가,
어쩌지 못하는 생명을 보듬고 내몰린 곳.
거기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광기어린 유태인 천재 네이단 (Nathan).
그리고 소피와 네이단의 절망적인 사랑.
모든 것을 다 잃은 소피에게 사랑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 것은 차라리 광기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광기가 오히려 위안과 안식이 될 수밖에 없는...
둘 간의 사랑은 그래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미친 듯이 서로에게 몰두하지만, 네이단의 광기는 물과 불의 극단을 오갑니다.
그들의 사랑이 죽음으로 끝을 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지요.
순수함으로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소설가 지망생 스팅고 (Stingo)가 소피를
‘정상적인 사랑’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을 소피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소피는 스팅고와의 ‘정상적인 사랑’ 대신 네이단과의 동반 자살을 택합니다.
"Ample make this bed.
Make this bed with awe;
In it wast till judgment break
Excellent and fair.
Be its mattress straight,
Be its pillow round;
Let no sunrise yellow noise
Interrupt this ground"
(이 쓸쓸한 침상 위에
찬란한 빛이 비추이게 하라.
심판의 새벽이 올 때까지
이 빛나는 아침
이불깃 똑바로 접고
베게도 두둑이 두어
아침 햇살 외 그 어떤 것도
감히 훼방치 못하게 하리)
함께 기거했던 브루클린의 하숙집 이층.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권총으로 자살한 소피와 네이단의 주검 옆에
펼쳐진 채 놓여진 시집 속의 詩 한편.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의 詩 입니다.
소피는 네이단과 함께 동반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절망과 고통을 마감코자 한 것입니다.
그녀의 이 마지막 선택이 안타까움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왜 그럴까요.
디킨슨의 詩에서 처럼, 소피의 쓸쓸한 침상을 아침햇살만 비추도록,
그녀를 이젠 놓아주게 됐기 때문일까요.
'sapiens(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白石의 번역문학 (2) | 2020.07.17 |
---|---|
어머니의 '나이' (6) | 2020.07.14 |
茶山 정약용과 與猶堂 (6) | 2020.07.03 |
아내는 '천하장사' (10) | 2020.07.01 |
'천득수' 상병 (2) | 2020.06.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