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돋보기, 모자.
근자에 이 세 가지를 잃어버렸다. 우산과 돋보기 안경은 마산 길에서, 그리고 모자는 북한산 산행에서다. 술 먹은 후 가끔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나름 소지품을 잘 챙긴다고 자부해 왔는데,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는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다.
우산은 배낭 아래 주머니에 오랫동안 넣어져있던 것이다. 마산에 비가 오길래 모처럼 꺼내 썼다. 그리고는 하룻밤을 묵을 현철이 집까지 잘 갖고 가 다음 날 아침 분명히 원래 있었던 배낭 그곳에 넣고 현철이 집을 나왔는데, 사라졌다.
돋보기 안경은 고속버스에서 책을 보며 그 생각을 했었다. 이거 잘 잃어버리니 신경을 좀 쓰자. 그러고 꼼꼼히 챙겨 배낭 뒷주머니에 넣었는데, 집에 도착해 행장을 정리하려니 사라졌다. 나에게는 아주 오래 된 돋보기였다. 모자는 빨간 색 등산모다. 10여 년간 여름 산 다닐 때마다 쓰던 것인데, 지지난 주 산행 후 귀갓 길에 머리가 허전해서 손을 머리에 대보니 사라지고 없다.
한꺼번에 세 가지를 잃어버리고 나니 기분이 묘해지면서 좀 울적해졌다. 이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떠난 것은 단지 잃어버렸다는 것 이상으로 뭔가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어제 찾았다. 병만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니 빨간 모자 그거 코만도에 있더라. 내주 산행 때 내 갖고 가마." 지난 주 산행에 빠졌는데, 병만이들이 맥주 마시러 코만도에 가니 주인이 주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지금 내 손에 있지는 않아도 찾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병만이에게 답신을 보냈다. 그거 잃어버리고 우울증이 왔는데, 덕분에 찾았구나. 고맙다.
모자가 돌아오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 묘한 기대감이 든다. 그것 봐라. 모자가 돌아왔듯이 돋보기와 안경도 어느 날 불시에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다. 그것들이 뛰어 나가봤자 벼룩 아니겠는가 하는 자신감 같은 것. 어느 날 배낭에서 나오든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찾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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