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입맛
본문 바로가기
food, taste

밥맛, 입맛

by stingo 2020. 7. 9.

밥맛과 입맛, 이 둘이 따로 따로 노는 것인가가 헷갈린다. 밥맛이 입맛이요, 입맛이 밥맛 아닌가. 그렇게 여기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근자에 이 둘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밥맛은 밥을 포함해 반찬 등의 맛이라는 것이고, 입맛이란, 몸의 기질적인 상태에 따른 음식의 맛이 아닐까하는 것인데, 이는 엉뚱할 수도 있는,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밥맛이 없다는 것은 밥이나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입맛이 없다든가 떨어진다는 것은, 몸이 질환이라든가 계절의 변화로 음식의 맛을 잃게되는 경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이 두 가지 맛이 변하면서 없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 두 가지에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것은 술맛이다. 술도 덩달아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을 쓴다. 어떻게든 이 맛들을 돌려 놓으려고.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경구가 있지 않은가. "밥맛, 술맛 떨어지면 칠성판을 준비하라"는 것.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이 맛들을 되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나의 그런 기미를 아는 아내는 나름 열심히 반찬들을 장만한다. 밥도 때로는 잡곡에 때로는 백미 등으로 맛을 내려 한다. 그 정성이 고마워 맛있게 먹으려 하지만 입에 당기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민어조기를 좋아했다. 울산사는 여동생이 때때로 보내주곤 해 맛있게 먹었다. 지난 아버지 제사에 아내가 부산에서 주문을 해 제수용으로도 썼고, 굽거나 쪄서 반찬으로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조차도 밥 맛에 시들하다.

 

얼마 전부터 몸의 몇 군데가 안 좋은 것은 분명 입맛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허리통증은 통증이라는 질환 그 자체도 그렇지만, 독한 약은 입맛을 떨어지게 한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속병은 두 말할 것도이 입맛을 떨어 뜨린다. 그러니 나는 밥맛도 그렇고 입맛도 그런 이중고를 겪고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름대로의 분석이 있다. 특별한 분석이랄 것도 없다. 보편적으로 헤아려지는 것일 걸진대 그것은 바로 나이다. 나이 앞에 장사없다는 말은 밥맛, 입맛과도 통한다. 연부(年富)의 나이는 미각을 둔하게 하든가 잃어버리게 하는 것임을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비로소 절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밥맛, 입맛을 되찾으려고 애를 쓴다. 과장을 좀 보태 별 짓을 다 해 본다. 이런 가운데 하나 터득한 게 있다. 바로 퓨전(fusion)이라는 것이다. 퓨전이라니까 좀 복잡한 느낌이겠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이런 저런 맛을 함께 섞어 보는 것이다. 몇 가지 방법 가운데 개인적으로 좀 즐겨 해 먹는 퓨전이 있는데, 감자와 양파, 당근이 푸짐하게 들어 간 카레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먹는 것을 제하고 나는 나만의 카레를 별도로 챙긴다. 그것을 된장찌게나 콩나물 국 등에 함께 섞어 먹는 것이다. 손가락질 할 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이런 경우를 통해서 나만의 밥맛, 입맛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름의 처절한 자구책일 수 있는 것이니 비난은 하지 마시길 바란다.

白 石 시인은 흰 쌀밥과 가재미 한 마리로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맛 있게 먹고 있습니다. 밥맛, 입맛이 좋으니 시심은 절로 생겨날 것입니다. 시 제목이 '선우사(膳友辭)'이니, 곧 반찬 친구를 위한 글입니다. 이 시에서 반찬은 바로 가재미일 것이니, 백 석 시인의 이 시는 '가재미 예찬'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허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膳友辭,' 백 석)

 

 

 

 

 

'food, tas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수리 순대국 집  (0) 2020.07.23
역삼동 '원조 가시리'  (8) 2020.07.11
양수리 장마비 속의 好事  (0) 2020.07.03
소주보다 갈비탕  (2) 2020.06.29
움베르토 에코의 '요리'들  (6) 2020.06.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