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하마드 알리의 마지막 사진, 2016년 죽기 얼마 전의 모습이다.
캐시우스 클레이로 태어난 알리는 많은 전문가와 비평가들에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운동선수로 꼽힌다.
‘가장 위대한(the greatest)’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이름 앞에 붙어 다녔던 알리.
그의 ‘위대성’은 한편으로 복싱을 인권과 인도주의적 문제를 옹호하고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적극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역대 최고의 복서로 꼽히지만, 알리는 평생 인종차별과 차별에 맞서 싸웠다.
알리의 이런 신념에 얽혀진 이야기 한 토막.
알리는 1960년 올림픽 복싱 토너먼트에서 18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로 돌아왔지만 지역 신문에서 그를 비방하는 기사를 접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업적에 자부심을 느낀 알리는 어느 날 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외출한다.
그러나 한 식당에 들어선 알리는 웨이트리스로부터 서비스를 거부 당한다.
웨이트리스가 자신의 인격이 아닌 피부색으로만 자신을 알아본다는 사실에 분노한 알리는,
목에 걸었던 메달을 다리 위에서 오하이오 강에 던져 버린다.
그는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루더라도 인격이 아닌 외모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이다.
알리는 56승(37KO) 5패의 놀라운 커리어를 쌓았다.
그러나 선수 생활이 끝날 무렵 알리는 파킨슨병의 징후를 보였고, 결국 1981년 은퇴를 선언한다.
알리는 춤을 추는 듯한 인상을 주는 ‘알리 스텝‘과 '알리 셔플'과 같은 동작의 독특한 복싱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한방에 상대를 녹아웃시키는 ‘헤비 히터(heavy hitter)’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묘한 회피술, 그리고 민첩한 동작의 복싱스타일로 유명했는데, 이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더욱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게하는 알리 특유의 복싱기법이었다.
한편으로 알리는 복싱 해설에도 능했다. 그의 해설이 ‘시적(poetic)’이었다는 것.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고,
그리고 관대한 태도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 ‘세기의 복서’였던 것이다.
*사진작가: 제논 텍세이라(Zenon Texeira).
(article & photo from ‘Historic World’ on Facebook)
#Muhammad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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