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게 들린 순대국밥 집이다. 구 일산시장 안 중앙식당.
오늘이 25일이라 나는 일산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인 줄 알고 시장구경 삼아 전철 타고 갔다.
그러나 시장은 한산했다. 아무리 오랜 만이라지만, 이럴 수가 없다는 생각에 채소가게 처녀에게 물었다.
오늘이 오일장 아니냐?. 오일장은 3, 8일에 서요.
처녀의 답변은 간단 명료했다.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이다.
나는 25일, 그러니까 5로 끝나는 날이니 오늘이 오일장으로 알았는데,
3, 8일로 정해져있는 오일장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참 많이 다녔던 오일장 일산시장인데,
이제는 그 날짜마져 계산이 안 될 정도로 내 머리가 먹먹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온 김에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아무리 오일장이 아니라지만 너무 어둡고 휑한 게 혼자 다니기가 머쓱할 정도로 한산하다.
시장은 원래 사람들이 오가고 복작대고 해야 그 맛이 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빨리 여기를 뜨고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에 눈을 돌려 봤더니 마침 중앙식당이다.
이 식당은 순대국을 잘 하는 집으로, 예전에 후배들과,
아니면 혼자서 가끔씩 낮술을 즐기기도 한 푸짐한 순대전문 식당이다.
별 생각 없이 그저 옛날에 하던 그 행태 그대로 그 식당으로 빨려들듯이 들어갔다.
어느 식당이나 그렇듯 혼자 들어가면 항상 이렇게 묻는다. 혼자냐?
안내해 주는 곳은 후진 구석자리다. 순대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중국 억양이 섞여있는 뚱뚱한 아주머니는 주문과 함께 공기밥과 기본 반찬을 깔아주더니,
이어 펄펄 끓는 순대국이 나왔다.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떠 넣었다. 뜨겁다는 것 외에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점점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후각과 미각 탓이렸다. 몇 숟갈을 떠 먹고서야 그 맛이 느껴졌다.
그렇고 그런 입에 익은 맛이다.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졌으나 참자 했다.
순대국 맛이 느껴져 오면서 입맛이 살아났고, 그럴 수록 우거적 우거적 씹는 입안이 풍성해졌다.
내가 앉아있는 바로 앞 방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전날 마신 술이 작취미성인 상태로 아침부터 후배들과 그 방에 앉아 해장술을 마시던 그때가 새삼 그리워졌다.
안 그래도 오늘 대곡역에서 전철을 타려는데, 내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우람한 체격이나 뒷배 모습이 꼭 후배를 닮았다. 아는 체를 하려다 그만 두었는데,
막상 혼자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그 후배 생각이 났다. 그냥 그 후배를 꼬드겨 일산시장 순댓국집에서 낮술 한잔 하자했으면
“행님, 행님”하며 아마 따라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플란트 시술을 한 후 뭘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래서 밥은 될 수 있으면 혼자 먹으려 하는 게 습관처럼 됐다.
그래서 순대국밥도 그렇게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게다가 순대국밥을 집에서처럼 느긋하게 먹고있는 나를 식당 측에서는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아직도 순댓국 그릇에는 고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걸 다 먹으려면 지금까지 먹은 시간 만큼 더 걸릴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꾸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둘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남기고 일어섰다.
순대국을 거의 삼분지 일을 남겨놓은 채로.


#중앙식당순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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